칼럼니스트 2003년 2월 6일 No. 595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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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6일 [그해오늘은] '장미의 스타비스키'



프랑스와 독일은 첫눈에도 대조적이다. 독일인이 집단적이라면 프랑스인들이 개인주의적으로 비친 것이 우선 그렇다.

그런 나머지 큰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독일은 히틀러가 그렇듯 파시스트적이고 프랑스는 그런 극우파의 피해를 입으면서 저항한 진보세력의 본산이라는 식이다.1934년 오늘(2월6일) 프랑스 의회 주변에서 일어난 극우파의 난동은 그것이 얼마나 턱없는 선입견인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그것은 독일에서 나치가 집권한 1년 뒤이자 스페인의 파시스트 프랑코가 반란을 일으키기 2년전이다.

15명의 사망자를 낸 이 유혈난동이 일어나게 된 표면적인 이유는 러시아계 유태인 알렉상드르 스타비스키의 사기사건이다.

이 사건은 74년 '장미의 스타비스키'라는 영화로도 유명하나 그 내막은 영화제목처럼 화사하지 않다.

금융업자이자 사교계 스타였던 스타비스키가 프랑스 남부 바욘에 세운 신용조합의 채권이 휴지조각으로 된 것이 그 시작이다.

이에 야당인 극우파들은 그가 사기 친 거금이 고위층들에게 흘러들어 갔다며 좌파가 주도하는 제3공화정을 뒤흔들려 했다.

그러던 판에 스타비스키가 스위스와의 접경 도시에서 시체로 발견되자 이들은 물증을 찾았다는 듯 시위가 아닌 폭동을 일으켰다.

'악시옹 프랑세즈'(프랑스 행동)와 '크루아 드 푀'(불의 십자가) 등 극우단체들이 총동원돼 콩코드 광장을 뒤흔들었고 수상이던 쇼탕은 물러나야 했다.

그러고 보면 '불의 십자가'도 무솔리니와 프랑코의 주변에서 흔히 보던 카톨릭 극우세력들이었다.그러나 제3공화정은 노동자들의 지지로 파쇼의 집권을 막았다. 그것이 정권의 복인지 노동자들의 복인지는 헤아리기 어렵다.


- 세계일보 2003.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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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평 (梁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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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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