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1월 29일 No. 588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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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의 유래와 세시풍속 - 그 때 그 시절의 설이 그립다

●…가난했던 시절, 설은 기다림

가난했던 어린 시절, 설은 기다림이었다. 설은 설빔을 입을 수 있고 푸짐한 음식에 세배 돈까지 챙기는 풍족한 날이다. 섣달 그믐께부터 어머니의 손끝에서 묻어나는 음식냄새가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설탕이 귀하던 그 때 방앗간에서 빚어온 말랑말랑한 떡가래를 뚝 떼어 그냥 먹어도 혀끝에 감도는 쫄깃쫄깃한 맛을 잊을 수 없다. 가마솥에 고아낸 조청과 식혜의 달착지근한 향기는 입안에 긴 여운을 남겼다.

설날 아침 차례상을 물리면, 기다렸다는 듯 세배를 하고 덕담은 뒤로 한 채 세배 돈을 받아 집을 나선다. 집성촌이던 고향엔 세배 돈을 챙길 수 있는 친척들이 올망졸망 이웃해 살았다. 쌓인 눈을 밟으며 친인척 집을 순회한 뒤, 귀를 에이는 칼바람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또래들과 어울려 이리저리 몰려다니던 그 때 그 시절의 설이 그립다.

●…설 어원은 '설다'가 아닌 '서다'

설은 음력 정월 초하룻날로 민족 고유의 명절이다. 설빔을 입고 차례를 지내고, 웃어른께 세배를 드린다. 이웃끼리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다채로운 행사와 다양한 놀이를 펼쳤다.

'설'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설은 '한 살 나이를 더 먹는다'에서의 '살(歲)'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우리말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우랄 알타이어계에서 해가 바뀌는 연세(年歲)를 산스크리트어로 '살'이라고 하는 데, 이 살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고 한다. 그 하나는 해가 돋아나듯 새로 솟는다는 뜻이요, 다른 하나는 시간적으로 이전과 이후가 달라진다는 구분이나 경계를 뜻한다. 또 '살'이 '설'로 된 근거로 '머리(豆)'가 '마리'에서 왔다는 사실을 근거로 유추한다.

또 다른 견해는 '설다(제대로 익지 않다)' '낯설다' '설어둠(해가 진 뒤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은 어둑어둑한 때)'의 어원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신용하 서울대사회학과교수는 설 또는 설날의 의미풀이가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 언론매체마저 틀린 해설을 국민에게 알리는 오류를 범하는 것은 잘못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의 설명에 의존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설'이란 말은 '설다' '낯설다'의 '설'이라는 어근에서 나왔다고 설명하고 있다. '새해에 대한 낯섦', '새해라는 문화적인 시간인식 주기에 익숙하지 못한 속성을 가장 강하게 띠는 날이 바로 설날'이기 때문에 새해라는 문화적 충격이 강해서 '설다'는 의미, 즉 '설은 날'의 의미로 '설날'이라고 말하게 되었다는 해설은 잘못된 것이다.

신 교수는 '설날'의 '설'은 '서다(立)'를 어근으로 하여 (새해에)'들어서다' '서다' '시작하다' '처음이다'의 의미를 가진 용어라고 풀이한다. 고대 한국과 동아시아에서는 '처음 시작하다'를 '서다', '들어서다'로 표현하는 관습이 예부터 있었다는 것. 예컨대 '봄에 들어서다' '봄이 시작되다'를 '입춘(立春)'으로 표현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풀이한다. 과거형인 '선날'이라고 하지 않고 미래형인 '설날'이라고 표현을 취한 것은 '설날'이 미래 1년의 생활을 설계하여 '세우고' 다짐하는 '미래를 세우는 날'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설의 어원엔 '사린다' '삼간다'에서 온 말로 조심한다는 뜻도 담겨있다. 설이란 그저 기쁜 날이라기 보다 한 해가 시작된다는 뜻에서 모든 일에 조심스럽게 첫발을 내딛는 매우 뜻깊은 명절로 여겨왔다. 그래서 설날 몸가짐에 그릇됨이 없도록 조심하는 날이라는 뜻의 '신일(愼日)'이라고 해서 바깥에 나가는 것을 삼가고 일년동안 아무 탈 없이 지낼 수 있게 해주기를 신에게 빌어 왔었다. 특히 정월 첫 번째 든 용날(辰日)에는 비가 알맞게 내리기를 빌고, 말날(午日)에는 농사일을 해주는 말이 일년 내내 잘 지내게 해달라고 빌었으며 쥐날(子日)과 돼지날에는 쥐와 돼지가 곡식을 해치는 일이 없게 해달하고 비는 마음에서 조심했었다.

●…'말 빚'까지 갚고 새해를 맞았다

설은 한해의 시작이기에 새해를 새롭고 깨끗하게 맞기 위해 집 안팎 청소와 빚 청산은 필수였다. 집안은 물론, 광이나 뒤란까지 말끔히 청소했다. 차례 때 쓸 놋그릇을 닦는 일은 어머니의 몫이다. 흙으로 빚은 기와를 잘게 부슨 가루를 짚수세미에 묻혀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았다. 아버지는 빚을 안고 새해를 맞이할 수 없다며 빌려 온 돈도 갚고, 심지어 낫이나 괭이 등 빌려 온 농기구를 챙겨 되돌려 주었는가하면 '말 빚'까지 갚았다.

설하면 먼저 설빔을 떠올리게 된다. 설빔이란 새해를 맞이하여 차려입는 새 옷을 말한다. 묵은 것을 털어버리고 새롭게 한 해를 맞이한다는 의미에서 설날 아침에 새 옷을 입는다. 설빔은 남녀노소 빈부격차를 막론하고 살림형편에 따라 마련한다. 설빔을 입은 뒤에 차례를 지내고 어른에게 세배를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맡에 내복과 양말과 새 옷이 가지런히 놓여있던 기억도 새롭다.

'설날' 가장 중시된 풍속은 새해인사다. 조상에 대한 새해인사가 '차례(茶禮)'이고, 생존한 집안 어른들과 마을공동체 어른들에 대한 새해인사가 '세배(歲拜)'다. 웃어른께 세배를 하면덕담(德談)을 듣는다. 덕담은 새해를 맞이하여 서로 복을 빌고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뜻에서 축의를 표시하는 것이다. 덕담은 어른이 먼저 한 후에 아랫사람이 하는 것이 예의다.

덕담 풍습은 조선후기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나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등 여러 문헌에 언급된 것으로 보아 역사적 기원이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열양세시기'의 기록에 따르면 '원단에서 3일 동안은 깨끗한 옷차림을 한 남녀들이 거리에 왕래하느라 떠들썩하다.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했다. "새해에 안녕하시오" "올해는 꼭 과거에 급제하시오" "생남하시오" 등 좋은 일을 들추어 상대의 바람이 성취되라고 말했다.'

●…떡국의 영양학 '꿩 대신 닭'도 좋아

설날 세시풍속의 독특한 설 음식이 떡국이다. 떡국은 쌀이 주원료이니 출출한 속을 채워주기에 부족함이 없고, 모자란 담백질은 계란이나 소고기 버섯 등의 고물을 얹어 보충하기 때문에 영양학적으로도 매우 훌륭한 음식이다. 떡국은 지역에 따라 그 맛과 끓이는 방법이 독특하다. 충청도 지방은 쌀가루를 반죽해 가래떡처럼 길게 늘려서 떡국처럼 썰어 끓이는 '생떡국'이 독특하고, 개성지방은 가래떡을 가늘게 비벼 늘려 나무칼로 잘게 잘라서 끓이는 '조랭이 떡국'이 유명하다. 예전엔 꿩고기로 국물도하고 다져서 만두를 했으나 꿩 대신 쇠고기나 닭고기를 많이 사용한다. '꿩 대신 닭'이란 말의 유래는 바로 이 때문이다.

설날엔 새해 풍년과 집안의 복을 기원하며 '복조리'를 사서 매달아놓는 풍습이 있다. 민가에서는 벽장과 미닫이문에 십장생(十長生), 범과 까치, 닭, 대나무, 난초 등을 그린 '설 그림'을 붙였다. 벽 위에 닭과 호랑이의 그림을 붙여 액이 물러가기를 빌고, 남녀의 나이가 삼재(三災)를 당한 자는 3마리의 매를 그려 문설주에 붙이기도 했다.

설 놀이로는 윷놀이, 널뛰기, 연날리기, 썰매타기와 팽이치기가 대표적인 것들이다. 윷놀이는 고조선·부여시대부터 오늘날까지 가족 설놀이로서 널리 행해져왔다. 윷놀이는 남녀노소가 함께 하는 가장 보편적인 놀이로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 사이에 한 가족은 물론, 마을 사람이 함께 모여 즐겼다. 윷놀이에 쓰이는 '도' '개' 등 말들은 고대 부여의 관직 이름과 직결되어 있다.

여자들의 대표적인 놀이는 널뛰기다. 조선조 양반사회에서는 여자들이 자연스러운 몸놀림을 억제해 왔지만 서림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린 널뛰기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놀이공원이나 스키장이 없던 시절 얼음판에서 즐기는 썰매타기는 가장 즐거운 놀이다. 앉은뱅이 썰매는 주로 여자아이나 꼬맹이들이 즐겼고, 큰 아이들은 서서 탔다. 썰매를 끈으로 묶어 어린 동생들을 태워 끌고 다니는 풍경도 무척 정겨웠다.

팽이치기는 사내아이들이 많이 즐겼다. 얼음판이나 땅바닥에 손으로 팽이를 돌린 다음 가는 막대기에 헝겊 또는 삼실을 달아 만든 팽이채로 쳐서 세게 돌린다. 가장 오래 도는 팽이가 장원으로 뽑힌다. 먼 옛날 도토리나 상수리처럼 둥글고 길쭉한 물체를 돌리기 시작한데서 유래된 것이라고도 하고, 당나라 때 놀이가 시작되어 삼국시대 때 우리나라에 전해지고 다시 일본에 건너가서 '고마'라는 이름으로 성행, 발전하여 우리나라에 역으로 전해졌다고도 한다.

●…아직도 달력에는 '신정'이라니

우리나라는 '태양력'을 채택한 1896년 1월 1일부터 '양력설'과 '음력설'이 병존하면서 '신정'과 '구정'에 대한 논란이 최근까지 이어졌다. 과거 일제는 우리 고유의 명절인 설을 없애기 위해 떡을 못 만들도록 섣달그믐께는 1주일 동안 떡방앗간 문을 닫게 하는 횡포를 부렸다. 8.15 광복이후에는 '이중과세'라는 명분으로 음력설을 홀대하는 정책이 이어지는 등 수난을 겪은 뒤 겨우 제자리를 찾았다.

그러나 아직도 달력에는 신정(新正)이라는 단어가 버젓이 표기돼있다. 일제의 유산인 신정이 그대로 쓰이는 것은 새로운 시대에 걸맞지 않다.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따라 1월1일은 연초라서 하루 쉬는 것뿐이다. 우리 고유의 문화전통이 살아 숨쉬는 명절은 역시 설이다.

- <디지탈 포스트 2월호> (2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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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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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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