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1월 28일 No. 587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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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8일 [그해오늘은] 德律風 傳語 (덕률풍 전어)



1898년 오늘(1월 28일) 제물포(인천)로부터 외아문으로 영국의 범선 3척이 입항할 예정이라는 전화가 걸려 오고 그것은 '덕률풍 전어'(德律風 傳語)라고 기록된다.

한문 실력이 뛰어나도 그것이 무슨 뜻인지는 모른다. '덕률풍'은 'Telephone'(전화)의 중국식 발음이니 한문이 아닌 중국어 실력에다 영어 실력도 있어야 한다.

'덕률풍'만이 아니라 '득률풍'(得律風)이나 '덕진풍'(德盡風)에다 '다리풍'으로도 소개됐다.

그 밖에 '전어기'(傳語機)나 어화통(語話筒)으로도 불렸으나 그 정도는 최소한의 문자속과 눈치가 있으면 알 만한 일이었다.

새삼 전화 이름을 나열한 것은 개화와 침략의 바람이 한꺼번에 불어오던 당시 우리 사회의 어지러운 정황이 그 속에 담겨 있어서다.전화의 경우도 이름만이 아니라 도입된 과정이 어수선하게 기록돼 있다.

이날의 통화가 서울과 인천간의 첫 통화라는 기록도 있으나 어떤 기록에서는 서울∼인천간의 전화공사가 1900년 이후에 완성된다.

반면 '백범일지' 등에서는 1897년 8월 23일 공사가 완료되고 그 3일 뒤 고종이 친히 전화를 하지 않았더라면 백범은 사형을 당할뻔한 것으로 돼있다.

조선이 전화와 연을 맺을 때의 정황도 그렇다.

1882년 영선사 상운(尙澐)이 청나라에서 가져 온 전화기 두 대가 첫선을 보일 무렵 일본은 대륙침략을 위해 부산∼나가사키 해저 케이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 한국이 오늘날 최대의 휴대전화기 생산국이 됐으니 반갑다. 특히 처음으로 전화기가 들어왔던 중국의 휴대전화기 시장으로 한류열풍이 불고 있어 더 그렇다.

모든게 좋아진 것은 아니다. 전화예절이 세계 최하라는 말을 들으면 개화기의 상투머리 교환수들이 그립다.


- 세계일보 2003.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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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평 (梁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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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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