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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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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8일 [그해오늘은]
德律風 傳語 (덕률풍 전어)
한문 실력이 뛰어나도 그것이 무슨
뜻인지는 모른다. '덕률풍'은 'Telephone'(전화)의 중국식 발음이니 한문이 아닌 중국어 실력에다
영어 실력도 있어야 한다. '덕률풍'만이 아니라 '득률풍'(得律風)이나 '덕진풍'(德盡風)에다
'다리풍'으로도 소개됐다. 그 밖에 '전어기'(傳語機)나 어화통(語話筒)으로도 불렸으나
그 정도는 최소한의 문자속과 눈치가 있으면 알 만한 일이었다. 새삼 전화 이름을 나열한
것은 개화와 침략의 바람이 한꺼번에 불어오던 당시 우리 사회의 어지러운 정황이 그 속에 담겨
있어서다.전화의 경우도 이름만이 아니라 도입된 과정이 어수선하게 기록돼 있다. 이날의
통화가 서울과 인천간의 첫 통화라는 기록도 있으나 어떤 기록에서는 서울∼인천간의 전화공사가
1900년 이후에 완성된다. 반면 '백범일지' 등에서는 1897년 8월 23일 공사가 완료되고
그 3일 뒤 고종이 친히 전화를 하지 않았더라면 백범은 사형을 당할뻔한 것으로 돼있다.
조선이 전화와 연을 맺을 때의 정황도 그렇다. 1882년 영선사 상운(尙澐)이 청나라에서
가져 온 전화기 두 대가 첫선을 보일 무렵 일본은 대륙침략을 위해 부산∼나가사키 해저 케이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 한국이 오늘날 최대의 휴대전화기 생산국이 됐으니 반갑다. 특히
처음으로 전화기가 들어왔던 중국의 휴대전화기 시장으로 한류열풍이 불고 있어 더 그렇다.
모든게 좋아진 것은 아니다. 전화예절이 세계 최하라는 말을 들으면 개화기의 상투머리 교환수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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