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1월 28일 No. 586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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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학력 수난 시대

30년전 수습기자 면접 때 “정지용(鄭芝溶) 시인에 대해 아는 대로 답변하라”는 질문을 받고 당황한 적이 있다. “1930년대에 활동한 서정 시인으로 6.25 때 납북됐다”는 답변만을 겨우 했을 뿐이다. 납북 및 월북 문인들은 문학연구에서 조차 정×용으로 표기하는 등 익명이 요구되는 시절이었다.

당시의 미적지근한 답변으로 인해 정지용은 풀지 못한 과제처럼 잠재의식 속에 생채기로 남아 있었다. 1988년 납·월북작품에 대한 해금조치 이후 ‘정지용 전집’이 간행되고 ‘지용회’가 결성됐으며 ‘지용문학상’이 제정되는 등 정지용연구가 본격화 됐다.

정지용의 고향인 충북 옥천군에서는 해마다 '정지용문화제'를 연다. 1996년에는 그의 생가를 복원했다. 안채와 행랑채 등 2동의 초가와 우물, 사립문, 담장 등 1930년대의 전형적인 초가 형태로 지었다. 그곳을 둘러보면서 명시 ‘향수’의 배경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옛 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은 시멘트 개천으로 변한 채 물 흐름이 실낱같다. 한약방을 운영했던 그의 선친은 환자에게 ‘정고약’을 녹이기 위해 ‘질화로’를 여름에도 방안에 두었다.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는 12살에 결혼한 동갑내기 송재숙으로 유학 간 남편대신 자식들을 키우며 맨발로 들에 나가 일했다.

정지용은 납북인가 자진 월북인가? 아직도 그 해답은 풀리지 않는다. 2001년 2월 남북이산가족상봉 때 남쪽에 사는 정지용의 장남 구관(74)씨와 북에서 방송인으로 활동한 셋째 아들 구인(69)씨가 만났어도 정지용의 죽음에 얽힌 의문은 풀지 못했다. 남측의 큰아들이 "아버님은 어떻게 돌아가셨냐"고 묻자 북측의 동생은 "아버지는 북한으로 오시던 중 남한의 소요산에서 폭사하셨다"고 말해 자진 월북에 무게를 두는 발언을 했다.

수습기자 채용방식도 다양화

지금까지 남한에 알려진 정시인의 사망 장소와 과정은 ‘6·25 전쟁시 유엔군의 평양교도소 폭격 때’였다. 이는 지난 1990년 사망한 계광순 전 국회의원의 주장에 따른 것이다. 계광순씨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정시인이 우익활동 혐의로 1950년 7월 북한군에 의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으며, 이후 평양교도소로 이감돼 춘원 이광수와 같은 방을 썼다"며 ”그 해 9월23일 유엔군의 폭격 때 나는 평양감옥을 탈출했지만 정시인은 사망했다”고 기술해 납북임을 강조하고 있다. 필자가 만난 장남 구관씨의 주장 역시 납북이다. 30년전 면접시험 때 받은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변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수습기자 면접 시험을 치르고 기자가 된 뒤 20여년의 세월이 흐른 후 수습기자 면접시험관으로 참가하여 질문을 하는 입장이 됐다. ‘언론고시’라는 말이 붙을 만큼 경쟁이 심한 기자시험에서 마지막 관문인 면접까지 오는 젊은이들은 어디 내놔도 떨어지지 않는 우수한 인재들이다.

기자로서의 지식적 자질은 충분히 인정돼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조직에 적응할 인간성을 파악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화재 현장에 취재를 갔다. 기사 마감시간은 촉박한 데 현장에서 아이가 화염에 휩싸여 죽어가고 있다. 기사를 먼저 송고 할 것인가? 아이의 생명을 먼저 구할 것인가?”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아이도 구하고 기사도 보내겠다"는 ‘눈치성·봉합형’ 대답이 대부분이었다. 기사는 낙종하면 다음에 특종을 하여 만회할 수 있지만 하나뿐인 생명은 귀중한 만큼 아이부터 구하겠다는 답변을 기대하고 던진 질문이었다.

편집국의 분위기도 세월 따라 많이 변했다. 지난 날 선후배사이의 위계 질서가 엄격했지만 인간적인 관계는 돈독했다. 평생직장 개념이 무너지고 연봉제가 도입되면서 직장내 인간관계는 실무적, 경쟁적, 이기적인 관계로 바뀌었다. 예전엔 퇴근 후 선배가 술 한잔하자면 후배는 선선히 따라 나섰지만 요즘은 선약이 있다며 거절하기 일쑤다. 엄격해진 업무 평가로 인해 일하는 환경이 빡빡해졌고 조직보다는 개인주의 경향이 팽배해진 탓이다. 다면평가제가 도입되면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다양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을 필요로 하는 언론이기에 사회변화를 읽어내는 성찰력과 전문성을 가진 기자채용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채용 방식의 변화도 다각적으로 검토돼야할 시점이다.

석·박사학위 기피현상 뚜렷

얼마 전 PD 출신 주철환 교수가 ‘영어·상식으로 뽑는 PD를 감성·의식도 아름다운 사람으로 선발하자’고 제의한 칼럼을 흥미롭게 읽었다. 방송의 지향점이 시청자들의 건강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PD는 시청자의 행복과 건강을 책임질 사람을 골라야 한다는 주장이다. PD지망생들에게 기획 안을 써내게 하고 실제로 디지털 카메라 한대씩 쥐어주며 작품 하나를 만들어보게 하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방법론도 제시한다. 그 또한 지원자가 많고 가져온 작품을 꼭 그 사람이 만들었다고는 보장할 수 없는 판단 기준의 함정도 있다.

C일보가 지난해 실시한 수습기자 공채에서 현장실습평가(취재 테스트)와 심층면접을 새로 도입해 실시해 언론계 안팎의 주목을 끌었다. 그동안 다른 언론사 공채에서는 합숙평가나 인턴과정 평가 등을 시행해왔지만, C일보는 '필기시험→작문시험→임원면접'의 전통적인 채용방식을 고수해 왔기 때문이다.

어떤 조직이든 필요한 인재를 뽑는 일이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취업난이 계속되면서 학력(學歷)이 높을수록 취업하기가 어려운 기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요즘 일부 기업에서는 석·박사 학위자를 우대는커녕 부담을 느껴 기피하는 사례까지 생겨나 ‘고학력 수난시대’를 실감케 한다.

어떤 기업은 각 대학에 우수학생을 추천해 달라는 공문을 보내면서 되도록 이면 학사 위주로 추천해 달라는 당부를 덧붙인다고 하니 고학력자 기피현상의 실상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해외 MBA나 공인회계사 자격증이 취업의 보증수표이던 시대는 끝났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전문자격증 소지자에 대한 기피현상도 뚜렷하다. 대통령직 인수위가 10대 국정과제 발표를 통해 첨단과학분야 핵심고급인력 1만명 양성과 함께, 일자리를 대거 창출하겠다니 기대를 걸어본다.

- <월간 '사진기자' 1월호> (2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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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http://columnist.org/kyoos
시인·칼럼니스트,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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