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1월 11일 No. 575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 딴 글 보기 | 손님 칼럼 | 의견함 | 구독신청/해지 | columnist.org |
<이규섭의 고개이야기 - 끝> 태백 통리고개

고개는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이 있다. 그러나 삼척시 도계읍 흥전리에서 태백시 연화동 통리 사이에 있는 통리고개는 넘는 고개가 아니라 올라가는 고개다. 고개위가 평지이고 마을이며 통리역 플레트 홈이다.

해발 720m의 통리고개를 예전에는 느릅령(유령·楡嶺)이라 불렀고 더 먼 옛날엔 우산현(牛山峴)이라 부르던 곳이다. 동해안 삼척지방에서 경상도 영주∼안동지방으로 가려면 반드시 이 고개를 넘어야 했다. 신라 때는 태백산에 천제(天祭)를 지내기 위해 임금이 넘던 고개였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삼척지방 백성들이 천제에 바칠 소를 몰고 넘던 고개로 우산현 또는 우보현(牛甫峴)이라고도 했다.

옛 느릅령 정상은 지금의 통리고개와는 다른 위치에 있다. 통리역 앞에서 태백시 방향으로 38번 국도를 따라 8㎞정도 가면 오른쪽으로 암자가 보인다. 암자 옆 오솔길을 따라 2㎞정도 오르면 느릅령 옛길이 나온다. 고개 마루에는 산신각이 있어 요즘도 해마다 음력 4월16일이면 태백과 삼척지역 사람들이 모여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는 천제를 지낸다.

통리고개는 1939년 일본인들이 태백산 지역의 석탄과 임산물을 수탈해가기 위해 철도를 개설하면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영동선 중 삼척 흥전역과∼나한정역 구간은 우리나라에 한 곳 밖에 없는 Z자 형의 스위치 백(Switch-Back)철로다. 이곳은 급경사의 산악지대로 기차는 흥전역에 도착하자 갑자기 뒤로 가기 시작한다. "어어! 열차가 뒤로 가고 있잖아" 영동선 열차를 타 본 사람이면 한번쯤 놀라게 되는 진풍경이다. 나한정역까지 뒤로 가던 열차는 역 구내에 들어서서야 다시 제 방향으로 달린다.

이곳은 해발 310m지점으로 통리고개 정상에 있는 통리역까지는 표고차이가 무려 410m나 된다. 길이 너무 가팔라 흥전역까지는 스위치 백으로 올라가고 흥전역부터는 ㄹ자형으로 통리역까지 간다. 심포리역에서 통리역까지는 직선거리가 1.1㎞밖에 되지 않지만 ㄹ자 형태로 각도를 줄여 7.7km를 돌아서 오른다.

1939년부터 1963년 5월 이전까지만 해도 심포리-통리역 구간에는 인클라인(Incline)이 설치되어 있었다. 인클라인은 심포리쪽에 권양기(捲揚機)를 설치해 놓고 화차(貨車)를 쇠줄로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이를 강삭철도(鋼索鐵道)라고 하며 일본인들은 '마끼'라고 불렀다. 이 방법은 화차(貨車)에 국한됐고 여객열차 승객들은 심포리역에서 내려 통리역까지 1.1㎞를 걸어서 올라가 대기하고 있는 다른 열차를 갈아타는 불편을 겪었다.

김강산(金剛山) 태백향토사연구소장은 그 당시의 일화를 이렇게 전한다. "심포리에서 내린 승객들은 철길 옆으로 나 있는 20∼30도의 비탈길을 걸어서 올라갔습니다. 당시 이곳엔 승객들의 짐을 날라다 주는 짐꾼들이 많았습니다. 노인이나 아녀자들을 지게에 지고 올라가 품삯을 받았다고 합니다." 겨울철에 눈이 쌓여 빙판이지면 비탈길에서 미끄러지지 않게 신발에 새끼줄을 매고 올라가야 했다. 그래서 새끼줄 장수들도 쏠쏠하게 재미를 보았다고 한다. 강삭철도는 5.16직후인 1963년 도계에서 통리까지 15개의 터널을 뚫으면서 ㄹ자형으로 철도를 부설, 우화 같은 인클라인 시대의 막을 내렸다.

태백지방에는 미래를 예언한 참문(懺文) 한 구절이 전해져 오고 있다. '철마가 느릅령을 넘어 오면 얼굴 검은 흑면장군이 수만백성을 먹여 살릴 것이다(鐵馬入於楡嶺 黑面將軍可活萬人)'고 했다. 예언대로 통리고개에 열차가 다니게 되면서 탄전지대의 석탄을 전국으로 실어 나르게 되었고, 흑면장군(黑面將軍) 격인 광원들이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격이 되었다고 태백사람들은 신통해 한다.

통리고개를 통해 실어 나른 석탄은 대중연료로 각광을 받았다. 석탄에너지는 산업발전에 큰 몫을 했고 황폐해 가는 산림을 녹화하는 데 기여했으나 사양길로 접어든지 오래다. 그러나 통리고개는 동해안 해산물과 내륙지방 농산물 유통의 중요한 길목이다.

통리고개를 찾은 길에 겨울 태백산(1,566m)에 오르면 눈 나라의 장관을 볼 수 있다. 백두에서 시작한 백두대간이 금강. 설악. 두타산을 지나 이곳에 민족의 영산을 빚어 놓았다. 태백산 등정 길은 국립공원 입구인 당골광장과 백단사 매표소, 유일사 매표소 세 곳이다.

유일사 코스는 절 부근까지 산판도로가 뚫려 있어 평탄하면서도 아기자기해 오르기에 편하다. 10분쯤 오르면 천재단과 유일사 갈림길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유일사까지 2.3㎞. 장군봉까지 3.7㎞. 정상인 천제단까지는 4㎞. 쉬엄쉬엄 걸어도 2시간이면 오른다.

하얀 능선을 따라 오르면 정상 못미처 천년의 그리움을 잉태하고 있는 주목(朱木) 군락지를 만난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지낸다는 주목의 어깨 위에 눈꽃이 피어 한 폭의 그림 같다.

정상에 오르면 천제단. 둥글게 쌓아 올린 석축 제단 중심부에는 '한배검'이라고 음각한 비가 있다. 신라시대에는 임금이 직접 제례를 올렸으며 그 전통은 고려와 조선조까지 이어졌다. 지금도 해마다 10월3일 개천절이면 천제를 지낸다.

태백산은 높되 가파르지 않고 크되 험하지 않다. 남성처럼 웅장하지만 어머니의 품속같이 산세가 부드럽다. 태백의 설경(雪景)은 4월까지 볼 수 있다. 하산 길은 당골 매표소 방향으로 잡는 것이 볼거리도 많고 편하다.



■ '스위치 백' 철로 사라진다

국내에서 유일한 '스위치 백' 철로가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이 구간에는 국내에서 가장 긴 연장 16㎞의 루프(고리)형 터널이 만들어진다. 급경사·급커브가 많은 산악지대에 주로 건설되는 '스위치 백' 철로에서는 기관차와 객차가 앞뒤를 바꿔가며 지그재그방식으로 진행한다.

철도청은 지난해 10월 "영동선 함백역∼도계역 구간(연장 19.6㎞)에 있는 15개 터널이 건설된 지 60년이 지나 붕괴 등 안전사고 위험이 커 새 노선(터널)을 건설키로 했다"고 밝혔다. 새 철도 노선 건설에는 4천210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며 2007년 준공된다. 이 구간은 일제말기인 1939년 삼척 탄전 개발 등을 위해 영동선(영주∼강릉 193.6㎞)가운데 최초로 건설됐다. 청량리에서 정동진까지 이어지는 관광 열차도 이 구간을 통과한다.

스위치 백 방식으로 운행되는 구간은 영동선 가운데 해발 고도 차가 가장 큰 흥전역(해발 349m)과 나한정역 사이 1.5㎞ 구간이다. 철도청 관계자는 "스위치 백 철도를 관광용으로 남겨두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안전사고 위험이 있어 철거를 결정했다"고 한다.

- <광업진흥 1월호> (2003.01)

-----
이규섭

http://columnist.org/kyoos
칼럼니스트·여행작가,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http://columnist.org
[칼럼니스트]를 이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