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3년 1월 5일 No. 573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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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물의 해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인들이 유럽여행을 하면서 신기하게 느낀 것 가운데 하나가 그들의 물병이었다. 유럽 여러 나라는 물에 석회질이 많이 포함돼 있어 수돗물을 그대로 마시지 못한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그렇게 사람마다 물병, 그것도 가게에서 산 것을 들고 나들이하는 것을 보고는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었다.

반대로 단체여행을 하면서 물을 사지도 않고 어쩌다 한 두 사람이 사면 그걸 그냥 달라고 해서 나눠 마시는 한국인들을 보고 유럽인들 또한 놀라는 표정이었다. 물을 공짜로 주고받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자기 먹을 양식을 가지고 다니는 수는 있어도 물이야 아무 곳에서나 마실 수 있는 땅에서 사는 우리가 보기에는 야박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가뭄에 밤잠을 자지 못하고 우물과 수도를 찾아다니거나 다른 사람과 싸움을 하고 논의 물꼬 때문에 툭하면 이웃간에 원수가 되는 수는 있지만, 그래도 물을 사들고 다니지는 않기 때문에 놀랄 만도 했다. 또 주한미군은 수돗물을 마시지 않고 어느 회사 제품 물을 생수로 쓴다는 말이 시중에 돌고 그걸 본따 일부 부유층도 구입해서 사용한다고들 했지만 호사가들의 사치쯤으로 여겼다.

그게 불과 20여 년 전의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집 안팎에서 물을 사서 마시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물 사정이 그만큼 심각해진 것이다. 돌아다니다가 물 한 바가지 얻어 마실 수 있는 것은 옛 이야기 속에나 가능한 일이 되었다. 그럼에도 물 소비 행태는 달라지지 않아 낭비는 갈수록 더 심하다.

물 부족현상은 세계적 추세다. 이를 틈타 물을 팔아 부를 챙기는 이가 있는가 하면 빈곤층은 물마저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 각종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또 물을 무기화하려는 세력도 없지 않아 평화를 위협한다. 국제판 봉이 김선달들이 설치는 것이다.

유엔은 이런 점을 감안 2003년을 '신선한 물의 해'로 정했다. 매년 3월22일은 유엔이 정한 물의 날이지만 이와 별개로 올 한해를 물의 해로 정한 것이다. 그리고 물이 더 이상 ‘경제적 자원’이 아니라 ‘기본적 인권’이라는 입장을 천명하면서 지구촌 차원의 대응책 마련을 촉구했다. 즉, 물 부족에 편승해 이득을 취하려는 관련 기업과 기타 세력 등의 움직임에 제동을 거는 것이다.

한국은 이미 물 부족 국가로 분류되었고 일본, 미국 등 물 풍요국들도 부족 위기에 놓였다고 한다.이런 추세라면 2025년까지는 세계인구의 3분의 2가 심각한 물 부족을 겪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끼니를 굶던 사람들이 물로 배를 채워 허기를 달래던 것마저 어려운 일이 되게 생겼다.

물 하나만은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럽던 산천을 우리는 지금 이 지경으로 버려놓았다. 더 이상 악화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부존자원이 부족한 땅에서 물마저 후손들에게 제대로 물려주지 못한다면 그 역사적 과오는 만주 땅을 잃은 것 못지 않게 클 것이다.

- 웹진 '인재제일' 1, 2월호 (2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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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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