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12월 26일 No. 569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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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는 끝났다


어제 아침 출근길 자동차가 빙판길에 미끄러지면서 4중 충돌사고를 냈다.눈이 많이 내린 것도 아닌데 크리스마스 휴일이어서 제설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듯 했다.이미 몇차례의 사고가 있었던 듯,가로수들이 눈길에 미끄러진 자동차에 부딪혀 부러지고 뿌리 뽑힌 모습도 보였다.내 차에 부딪친 자동차에 타고 있었던 20대의 여성은 사고 지점이 어느 구청 관할인지 궁금해 하더니 "이렇게 위험한 길에 아직까지 염화칼슘을 뿌리지도 않다니 인터넷에 올려야겠다"고 말했다.

인터넷에 구청의 게으름을 비판하는 글을 올리다니 신문기자인 나로서는 놀라운 일이었다.지난 12일자 이 칼럼에서 "인터넷으로 인해 한국의 정치지형이 바뀌고 있음에도 우리 사회,특히 주류 계층과 기존 매체의 의식과 법과 제도는 아직 그 변화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고 썼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세대와 인터넷의 힘에 새삼 또 놀란 것이다.

'인터넷 혁명'으로 평가 받는 제16대 대통령 선거는 노무현 당선자를 지지한 사람들에게 하나의 축제였다.20~30대 젊은이가 주축인 그들은 지난 대선을 신명난 잔치로 치렀다.흔히 선거를 '민주주의의 축제'라고 부르지만 그들이 치른 선거는 단순한 수사를 넘어서 진정 흥겹고 희망에 가득 찬 축제였다.그 축제의 마당은 인터넷이라는 사이버 공간이었고 온 라인의 축제는 19일 밤 노 당선자의 상대적 우위가 확인된 후 오프라인의 현실 공간으로 번져 서울의 경우 광화문 일대가 축제의 무대가 됐다.

그 축제의 무리 속에서 TV카메라에 잡힌 사람들이나 인터넷에 감격을 표현한 이들은 "정치도 재미 있을 수 있다는 기억을 갖게 된게 소중한 자산이다" "감동의 영화 한편을 본 것 같다" "'노사모'도 아니고 개혁정당도 아니지만 우리가 이룬 선거란 '축제'의 장에 함께 하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민주당 소속의 한 국회의원은 "선거 과정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느껴졌다.노 후보의 당선은 에너지의 분출이자 신명 풀림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축제는 끝났다.기적 같은 당선의 환희도,믿을 수 없는 패배로 인한 허탈도 모두 떨쳐 버리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우리가 돌아 가야 할 자리는 그러나 익숙한 과거가 아니라 엄청난 변화를 수반한 미래다.미국의 불룸버그통신은 한국의 16대 대선을 '과거와 미래의 싸움'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지난 선거에서 바로 미래가 과거를 이기므로써 우리 사회는 격변의 흐름을 타게 됐다.정치 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분야 등 모든것이 새로워지는 새로운 시대의 개막이 눈 앞에 온 것이다.

북한 핵 위기는 축제의 여운도 빨리 떨쳐 버리고 냉엄한 현실을 직시할 것을 우리 국민에게 요구한다.북한은 전력 생산과 무관한 원자력 봉인을 제거해 핵 폭탄을 제조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고,미국은 이에 맞서 "이라크와 북한 등 2개 지역에서 동시에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있다"고 위협하고 있다.지난 94년의 북 핵 위기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다.

노무현 당선자는 선거 과정에서 말한 대로 "미국과 북한이 싸움을 하면 한국이 나서 말릴 수 있는" 방안을 현 정부와 함께 시급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사실 노 당선자는 5년전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풀어야 했던 국제통화기금(IMF)위기 극복 보다 더 어려운 문제들을 지금 풀어야 한다.

북한 핵 위기가 해결된다 해도 정치 개혁,경제 개혁,사회 개혁,언론 개혁 등 숱한 난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는 대선에서의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고 정계 은퇴를 선언하면서 한나라당 당원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환골탈태의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도덕적으로 재무장하고 자기 혁신을 해야만 합니다." 이 말은 한나라당원들 뿐만 아니라 민주당원들은 물론이고 변화가 두려운 모든 사람들이 되새겨야 할 말이 아닌가 싶다.환골탈태의 자기혁신 없이 새 시대를 맞을 수는 없다.

- 대한매일 <임영숙 칼럼> 2002.12.26

임 영 숙
http://columnist.org/ysi
대한매일 미디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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