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12월 22일 No. 567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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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선거전

민주주의의 요체인 의회와 언론은 시민 개개인들의 뜻과 생각을 수렴, 정치·경제·사회 등 각 분야에 반영하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이는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부터 나오는 이른바 대의민주주의(간접민주주의)의 큰 틀로 고대 그리스나 현대의 스위스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국가가 채택하고 있다.

가장 이상적인 정치형태는 아니지만 현재로서는 더 이상 나은 제도가 없기 때문에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세계 곳곳에서 국민의 대표라는 공공성을 망각, 사리사욕을 위해 의원직 남용도 마다하지 않은 정치인과 국민의 여론을 대변한다는 미명 아래 오히려 시민 위에 군림하는 언론기관이 적지 않아 민주주의의 본질을 흐리는 사례가 많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4.19혁명, 5.18민주항쟁 등을 유발했고 그 상처들은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다.

디지털사회는 삶의 질을 여러 가지 면에서 향상시켜 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했는데 그 중 하나가 정치제도 개선이다. 즉 간접민주주의의 부작용을 크게 줄일 것이라고 전문가와 네티즌들은 전망했다. 보기만 해도 역겨운 정치인들이나 특정계층의 여론만 대변하는 언론에 기댈 것 없이 인터넷을 통해 자신들의 의견을 직접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이용자가 세계 상위급인 한국은 그런 점에서 다른 나라들의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근년의 국회의원선거, 지방선거 등에서 사이버 선거전의 위력을 보여 주었고 이번 대통령선거에서는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한 탓이다. 각 진영의 후보자와 정당이 여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대응한 것이 이를 입증한다. 인터넷상의 정치열기가 여러 가지 가능성을 보여 준 것이다.

그러나 사이버 선거전의 과열 양상은 적지 않은 실망과 우려를 낳게 했다. 자신의 의견을 조리 있게 제시하고 여기에 반박하는 사람은 논리적 모순을 지적, 상대를 설득시키고 사람들의 건전한 판단을 유도해야 하는데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인터넷의 익명성을 악용, 욕설과 흑색선전이 난무해 사이버 선거전이 아니라 그야말로 사이버 테러였다. 논리는 아예 없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을 당당히 밝히고 질서정연한 논리를 전개하면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은 물론 반대편도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리고 받아들일 것은 과감히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으면 논점의 문제를 설득력 있게 지적할 것이다. 그러면 당사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옆에서 보는 이들의 판단을 도와 최상의 합의점을 도출해 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광경은 극히 드물었다. 욕설과 비방만 난무하는 난장판으로 새로운 민주사회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우리 수준이 이것밖에 안 되는가 하는 탄식과 부끄러움을 토하는 이들이 많았다. 아쉬운 일이다. 네티켓과 건전한 토론문화가 자리잡지 못하고 이대로 간다면 디지털시대에도 수준 높은 민주사회 건설은 멀고 먼 일일 수밖에 없다.

- 웹진 '인재제일'11, 12월호 (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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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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