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12월 17일 No. 562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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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물건 버리지 못하는 병

나이든 세대는 대체로 헌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절약하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면서 살아와서 더 그런지도 모른다.

구닥다리 물건을 활용해 보려고 씨름하는 내게 아내는 “버려, 버려” 하지만 그 자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쓰지 않는 장독, 대물림받은 놋주걱과 다듬잇돌 같은 것을 끌고 다니는 것은 거기에 삶의 기억들이 서려 있어서일 것이다.

새 물건이 헌 물건을 밀어내는 것은 컴퓨터와 그 관련 기기에서 아주 심하다. 제조사들은 지난해 온갖 미사여구로 새 상품을 선전하더니 올해에는 그 물건을 몰아낼 다른 물건을 시장에 내놓는다. 구매자들이 볼 때 참 의리없는 행위다.

생산한 지 두어 해만 되어도 헌 물건 활용이 이 분야에서는 어려워지기 시작한다. 해결책은 요행히 인터넷을 통해 가끔 발견할 수 있다. 오래된 주변기기들의 드라이버 프로그램을 모아둔 사이트들과 뉴스 그룹을 이용하면 더러 길이 열린다.

1990년 말에 산 노트북 컴퓨터를 10년 동안 써오다가 배터리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아 2년 전부터는 쓰지 못하고 있다. 이 노트북은 구식이라 배터리가 방전되면 교류전기도 쓸 수 없다. 어떻게 길이 없을까 헤매다가 뉴스 그룹에서 찾아냈다. 배터리를 떼고 50옴 안팎의 저항을 달아 교류전원으로 쓰고 있다는 외국 전기기술자의 글이 있었다.

쓰지 않고 처박았던 고물 랜 카드를 노트북 컴퓨터에 다시 쓰려고 드라이버 프로그램을 인터넷에서 며칠 동안 찾아보았다. 겨우 찾기는 찾았으되 이 경우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최신의 윈도XP 버전만 있고 그 이전 버전은 없었기 때문이다.

드라이버 프로그램 하나를 찾으려고 사이트를 헤맨 시간들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이 시대에 절약은 미덕이 아니라 어리석은 짓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보물찾기처럼 즐거운 사이버 항해를 그만두지 못한다.


- 벼룩시장 <즐거운 인터넷 여행> 200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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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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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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