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12월 15일 No. 561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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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하면 손해보는 사회

미국의 투자분석가 로버트 기요사키와 공인회계사 샤론 레흐트의 공저(共著)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원제:Rich Dad Poor Dad)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돈에 대한 인식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가난한 아버지는 '돈을 좋아하는 것은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부자 아버지는 '돈이 부족한 것은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강조한다. 가난한 아버지는 독서의 중요성을, 부자 아버지는 돈 관련 지식을 강조하는 것도 대조적이다. 가난한 아버지가 돈은 항상 안전하게 사용하고 위험은 피하라고 당부하지만, 부자 아버지는 투자를 할 때는 위험을 관리하는 법을 배우라고 한다.

"난 너희들을 키우느라 돈이 많이 들어 부자가 되지 못했다"는 가난한 아버지의 변명은 가난에 대한 합리화다. 재산을 늘리기 위해서는 지출보다는 수입을, 부채보다는 자산을 늘려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주장이지만, 부채도 자산이라는 주장은 상식적 관념의 벽을 무너뜨린 발상이다. 하긴 고도성장 시절 우리나라 재벌들은 부채비율이 높든 말든 은행돈을 많이 끌어다 쓸수록 능력 있는 오너로 평가받았다.

필자 또한 한심하기는 이 책에 등장하는 가난한 아버지와 닮은꼴이 많다. 강남이나 신도시로 이주 행렬이 붐을 이루 때, "아직도 서울 변방 단독주택에 살고 있느냐"는 어느 후배의 질책성 핀잔을 들은 적이 있다. 게으르고 이재(理財)에 둔감한 탓으로 아직도 허름한 단독주택에서 20여년 째 살고 있다. 자고 나면 치솟는 아파트 값에 비해 단독주택이란 세월이 흐를수록 가치가 떨어지게 마련이다.

빈부격차 양극화 현상 심화

해마다 집수리를 해야 겨우 현상 유지가 가능할 정도로 생활의 불편도 이만저만 아니다. 그런데도 이사 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은 처음엔 땅을 밟고 살아야 한다는 알량한 명분에 고소공포증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이제는 아파트로 옮기려고 해도 단독주택을 처분하면 아파트 전세 입주도 못할 처지가 됐다. 그러고도 자식에게는 부채가 없는 것만도 얼마나 다행이냐고 강조하며 스스로를 위안하고 있다.

IMF 사태 이후 99년까지 소득분배가 급속히 악화되면서 빈부격차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소득분배를 대변해주는 지니계수가 지난 98∼99년에 3%가량 높아졌다. 이기간 동안 빈곤 계층은 2배로 늘어났다. 빈부격차는 주로 빈곤층의 부채 증가와 부유층의 부동산 소유 증가로 인해 급속히 확대됐다. 부동산 투기실태에서 드러났듯 아파트를 수십채씩 사들여 투기하는 부류가 있는가하면, 임대아파트 관리비 몇 십만원을 못내 투신자살하는 가장이 있는 것이 우리사회의 양극화 현상이다. 빈부격차의 심화는 중산층의 붕괴를 의미하고 중산층의 붕괴는 사회안전망을 해치게 된다.

올 상반기 국민 총저축률이 26.9%로 지난 1982년의 24.9%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빈부격차를 반영하듯 저소득층의 저축률은 ­3·4%로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지만, 고소득층은 여전히 36%를 웃도는 높은 저축률을 유지하고 있다.

저축률의 격차 뿐 아니라 현정권 들어 개인대출과 카드빚이 크게 늘어나 가구당 빚이 곧 3,000만원에 이르고 신용불량자가 250만명에 달할 정도로 신용위기도 심각하다. 정부의 가계대출억제조치에도 불구하고 가계빚의 폭증세는 좀처럼 사그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시중에 풀릴 대로 풀린 돈이 부동산버블을 부풀리고 집값 상승세가 다시 가계빚을 부추기는 악순환이 빚어지고 있는 셈이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빚이 경제거품을 부풀리며 가계파산까지 속출, 사회문제로 비화될 조짐마저 보인다.

그래서 나온 것이 '빚 탕감제'다. 정부가 통합 도산법에 '개인회생제도'를 도입, 이르면 내년부터 시행할 방침이라고 한다. 파산에 직면한 개인이 법원에 실천가능한 빚 변제계획(5년 이내)을 내고 성실하게 이행하면 나머지 빚은 탕감해준다는 것이다.

'빚 탕감제' 도입은 형평성 문제

과도한 빚으로 파산의 위기에 몰린 사람에게 재생의 기회를 준다는 원칙은 옳지만 '빚을 갚지 않고 망할 때까지 버티는 게 유리하다'는 인식을 심어줄 경우 신용불량자의 양산을 막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길 우려가 있다. 성실하게 빚을 다 갚은 다른 채무자와의 형평성도 문제다.

'국민의 정부'출범 이후 6차례에 걸쳐 선심 쓰듯 단행한 사면조치로 국민 5명중 1명꼴로 수혜를 입었지만 사회적 비용은 물론 형평성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사면이 권력의 선심 내지 민심회유용으로 오·남용되기로는 역대 정부가 다 마찬가지지만 현정부 들어 특히 심하다. 어느 시점 이전에 교통법규를 위반한 사람은 무죄가 되고 그 이후 위반한 사람은 유죄가 되어 '법은 지키면 손해본다'는 법치허무주의가 확산됐다.

이재에 둔감하고 게을러 돈을 벌지 못하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로 치더라도 '빚 탕감제'는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개인회생제도가 신용불량자를 무조건 구제해주는 조치로 인식되면 너도나도 먼저 빚을 얻고 나서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현행법상 파산선고를 받으면 직업을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각종 자격제한이 심한 현행 제도의 보완이 전제돼야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 <저널 뉴코리아 12월호> '이규섭 칼럼' (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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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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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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