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12월 5일 No. 554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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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규섭의 고개이야기<8> 대관령 옛길

이순원의 장편 '아들과 함께 걷는 길'의 무대는 대관령이다. 아버지가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대관령에서 강릉까지 6시간 동안 걸으면서 대화를 나눈다. 꾸밈없고 진솔한 부자간의 대화를 대자연이 포근하게 감싸주기에 그 산책은 더욱 넉넉하다. 둘이서 손을 잡고 걷는 산길 장면은 한없는 정겨움으로 다가온다.

필자가 대관령을 걸어서 넘었던 적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이었으니 어느새 40년 가까이 흘렀고 세월의 깊이 만큼이나 대관령 주변도 많이 변했다. 당시에는 먼지가 풀풀 이는 비포장 도로를 시외버스가 해수병 환자처럼 그르렁대며 오르내렸고 주변 풍경도 호젓하고 고즈넉했다. 대관령을 오르내리는 전담 운전기사가 따로 있을 정도로 위험한 고갯길이었다. 그 때는 휴게소 대신 주막집이 강릉 쪽 길모퉁이에 있어 오가던 길손들이 목을 축이며 지친 다리를 쉬어가기도 했다.

세월 따라 대관령도 변했다. 굽이굽이 에움길을 차량들이 매연을 뿜으며 곡예하듯 달리던 풍경도 요즘은 뜸해졌다. 대관령 터널이 뚫리면서 차량들이 보다 빠르고 편리한 쪽을 택하여 그쪽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대관령 고갯마루에 있던 대형 휴개소도 철수해 황량하다. 새 길이 뚫리면 옛길은 무참하게 황폐화되는 것이 우리의 개발문화다.

대굴대굴 구르던 '진짜 '대굴령'

황병산 줄기의 선자령과 제왕산 사이에 있는 대관령(大關嶺·해발 868m)은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와 평창군 도암면 횡계리 사이에 있는 아흔아홉 굽이 준령으로 길이는 13㎞나 된다. 먼 옛날 강릉에서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는 아들에게 어머니가 곶감 한 접(100개)을 챙겨주며, 한 모퉁이를 돌 때마다 한 개씩 빼 먹으라고 했다. 과객이 고갯마루에 도착해보니 곶감이 한 개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대관령을 아흔 아홉 굽이라고 한다.

대관령은 영동과 영서를 잇는 '큰 관문의 고개'라는 의미가 있으나, 고개가 너무 험해 '대굴대굴 크게 구르는 고개'라는 뜻이 담겨 '대굴령'이라고 했다가 음이 변해 '대관령'으로 불리게 됐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온다.

대관령 중에서도 '옛길'은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까지 영동과 영서를 잇는 유일한 길이었다. 영동지방 선비들이 한양으로 갈 때나 보부상들이 봇짐과 등짐을 지고 다닐 때 이용했던 길목이다.

아직도 조상들의 발자국이 남아 있는 대관령 옛길 출발점은 대관령 정상 부근의 반정(半程)이다. 조선시대 역마제도가 시행될 때 영동쪽 구산역과 횡계역 사이의 중간이라 하여 '반쟁이'라고 불렀고 지금은 '반정'으로 불린다. 그곳엔 '대관령 옛길' 표지석이 당시의 위치를 가늠해주고 그곳에 서면 강릉시와 동해 바다가 눈길을 시원하게 해준다. 탁트인 산세를 바라보노라면 호연지기가 솟는다.

‘늙으신 어머님을 강릉에 두고/이 몸은 홀로 서울길로 가는 이 마음/돌아보니 북촌은 아득도 한데/흰 구름만 저문 산을 날아내리네’

신사임당이 북촌의 친정어머니를 생각하며 지은 '사친시(思親詩)'의 고향도 대관령 마루턱 인 반정이다. 옛길 표지석 위쪽에 '신사임당 사친시비(申師任堂 思親詩碑)'가 사모의 정을 느끼게 한다. 사친비가 세워진 곳은 강릉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쉬면서 신사임당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계곡을 따라 굽이굽이 흘러 남대천을 이루었고, 그것을 중심으로 강릉 일대의 평야가 펼쳐진다.

옛길이 시작되는 반정은 경사가 가파르다. 대굴대굴 구른다 해서 붙여진 진짜 대굴령이다. 급경사를 조금만 더 내려가면 원시림을 만난다. 굴참나무·물푸레·물박달·고로쇠 등 하늘을 가리던 빽빽한 활엽수림도 옷을 벗은 채 낙엽을 이불 삼아 바닷바람을 견디며 긴긴 겨울을 날 것이다. 이따금 등산객이 오가는 호젓한 산길에는 맑은 계곡물 소리와 낭랑한 산새들의 노랫소리가 세속에 찌든 귀를 맑게 씻어준다. 옛 길엔 옛사람의 정한이 서려 있어 옛정이 흐른다. 쉬엄쉬엄 걷다보면 쫓기듯이 살고 있는 빡빡한 삶에 여백의 쉼표를 찍을 수 있어 더욱 좋다.

반정 부근 오솔길에는 '이병화 유해 불망비'가 세월의 덧옷인 이끼를 걸친 채 방치되어 있다. 1824년 강릉 관아의 기간(記官) 이병화(李秉華)를 기리기 위해 세워놓은 불망비다. 강릉의 향토지 '증보임영지(增補臨瀛誌)'에는 "이병화는 인정이 많고 너그러운 마음씨를 지닌 사람"이라고 평하고 있다. '대관령 삼십 리 길이 험준하여 사람이 살지 않았고, 겨울이면 얼어죽는 일이 많아 반정에 주막을 설치하였으며 이에 장사꾼과 여행객이 그 은공을 기려 비석을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몸 돌도 예삿돌을 세우고 글꼴 역시 단촐하여 담백한 품격이 느껴진다. 비석둘레에는 해묵은 돌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어 정성이 깃들어 있다. 기관이면 기껏 말단 이속(吏屬)이지만 백금(百金)의 돈을 내어 오가는 길손들을 위해 주막을 세웠다니, 예나 지금이나 그런 숨은 공복(公僕)들이 있어 세상을 밝게 하는 것이다.

불망비의 기록으로 보면 1980년 초의 대관령 길은 30리 산길이며 겨울엔 얼어죽는 사람도 많았고, 불망비 근처엔 오두막집이 있었다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곳에는 1960년대까지 살림집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오솔길 따라 맑은 계곡이 이어지고 계곡이 넓어지는 자리에 옛 주막터가 있다. 강릉시가 이곳에 주막 복원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반정에서 이 곳까지는 2.1㎞. 조금 더 내려가면 '원울이재'라고 부르는 야트막한 고개가 있다. 영동을 떠나는 고을원이 힘들고 괴로웠던 일을 생각하며 울었고, 영동의 인심과 경치가 아쉬워 울었다는 곳이다.

옛 '제민원'터에 대관령박물관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는 봄이나, 녹음 우거진 여름, 단풍이 불꽃처럼 타오르는 가을의 정취도 빼어나지만 아무래도 옛길은 흰눈이 사방을 하얗게 뒤덮는 겨울이 제격이다. 백지위에 옛 정취를 마음 내키는 대로 그릴 수 있다.

대관령 옛길의 길이는 4.6㎞. 옛길이 끝나는 곳이 제민원(濟民院)터다. 제민원은 조선시대 때 나라에서 나그네를 위해 숙박을 제공해 주던 집이다. 그 자리에도 '대관령 옛길-제민원' 이라고 쓴 표지석이 있고 그 옆에 대관령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대관령박물관에는 선사시대부터 현대의 민예품까지 민속유물 유물 2,000여점이 전시된 사설박물관이다. 야외전시공간은 전통장승, 문관석, 동자석 등으로 꾸며 놓았다. 박물관 뒤쪽에는 풀매, 연자방아, 향로석, 남근석 등의 석조물을 배치해 놓아 전시공간의 동선이 독특하게 느껴진다.

안으로 들어서면 백호, 현무, 토기, 청룡, 주작 등 6개의 전시실이 주제별로 나뉘어져 있다. 무한한 우주와 둥근 원을 상징하는 백호방은 미륵불, 불교미술품, 고서류, 서예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검은색과 거북을 상징하는 현무방은 주로 청동제품이, 토기방에는 석기류와 토기류가 전시돼 눈길을 끈다. 청색과 용을 상징하는 청룡방에는 고려청자와 조선시대 백자 등 도자기문화의 어제와 오늘을 조감해볼 수 있고, 우리방에서는 대원군의 친필 '만우정'을 만난다. 주칠과 봉황을 상징하는 주작방에는 고서화류, 가마 등이 전시되어 있다. 대관령박물관은 건축대상을 세 번씩 받은 걸작 건물이기도 하다.

옛길이 끝나면 만나는 마을이 어흘리(於屹里)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가마골, 문안, 반쟁이, 굴면이, 망월이, 제민원 등 이름에도 옛 정취가 묻어나는 6개 마을을 묶어 어흘리가 탄생했다. '어울린다' '합친다'는 의미의 행정적인 이름이 된 것이다. 대관령 자락의 여타 마을들이 '고랭지 농사'로 일확천금의 꿈을 일구며 살아가지만, 어흘리 주민들은 옥수수, 감자, 잡곡 위주의 밭농사에 생계를 걸고 살았다. 90년대 접어들면서 관광수입이라는 개념이 산골마을에도 찾아왔고 음식점 등 업종을 변경한 주민들도 있지만 이제는 환경문제가 새로운 골칫거리로 등장했다..

어흥! 호랑이가 먹고 남긴 것만으로도 먹고 살수 있다는 넉넉한 마을, 가파른 대관령길을 내려오는 동안 말고삐를 부여잡고 씨름을 하던 사람들이 고삐를 놓고 여유있게 걸어갈 수 있었다는 곳이 '굴면이 어흘리'이다.

■ 대관령 자연휴양림

대관령 옛길 부근에 위치한 대관령자연휴양림은 삼림욕의 명소다. 한 여름 울창한 숲 속 나무향기와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호흡하면 활력이 절로 넘친다. 총 1천633ha 면적에 70년이 넘은 소나무들이 주위에 빼곡하다.

통나무로 지은 산림문화휴양관은 콘도식 건물로 14개의 숙박실을 국산 나무로 마무리했다. 산벚나무방은 산벚나무로, 박달나무방은 박달나무로 내부를 장식해 각기 다른 분위기와 향기를 풍긴다. 이밖에도 숲속의 집 9동, 수련장 숙소 4동이 있으며 모두 취사시설이 갖춰져 있다. 하룻밤 묵으며 대관령의 추억을 간직하기에 좋다.

계곡의 물소리와 소나무숲을 스치는 솔바람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선계에 든 듯이 마음이 투명해진다. 이불처럼 푹신한 낙엽이 깔린 길을 산책하며 사색에 젖는 것도 좋다. 입장료 1,000원.

숲 속의 집은 4인실(7평) 4만원, 6인실(13평) 6만원, 8인실(20평)8만원. 7∼8월을 제외한 비수기에는 주말과 공휴일에 30%,평일에는 50%까지 할인해준다. (033-641-9999)

<광업진흥(2002.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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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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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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