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11월 27일 No. 551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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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법과 충돌한 대선후보 지지 사이트

12월19일에 치르는 제16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각 당의 후보들이 자신의 홈페이지를 만들어 네티즌들의 표심을 잡는데 힘쓰고 있다. 후보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사이버공간이 선거운동의 매우 좋은 마당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홈페이지를 방문해보면 자신이 벌이고 있는 정치활동과 주요 정책방향 및 공약 등을 소개하고 있다. 또 네티즌을 위한 게시판은 물론 메일창구를 통해 유권자들과 직접 대화를 하기도 한다. 어떤 후보는 부인의 글까지 실어 이성과 감성을 고루 자극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이처럼 대통령 후보 자신이 만든 홈페이지와는 별개로 후보를 공식·비공식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인터넷 사이트도 여럿 있다. 노사모, 창사랑, 창2002, 몽사모, 정위사, 정사랑 등이 그렇다. 어떤 사이트는 단순한 의미의 지지 차원에서 벗어나 특정후보의 승리를 위해 활동을 벌이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기도 했다. 또 순수한 지지모임이라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대선에서의 승리에 목표를 두고 있는 사이트도 있다.  

그래서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사이버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선거운동의 열기는 현실세계 못지 않게 뜨겁다. 후보자의 것이든, 지지자들의 것이든 각 홈페이지에는 네티즌들의 관심과 지지를 이끌어 낼만한 내용들로 가득 차있다. 게시판에는 후보자를 지지하는 격문이 잇달아 실리는가 하면, 비방하는 글도 적지 않게 올라오고 있어 대선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고 있다.  

그런데 대선을 채 한달도 안 남긴 시점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대통령후보의 사조직을 폐쇄하라는 명령이 내리자 큰 파문이 일고 있다. 특히 노사모, 창사랑, 몽사모 등 특정후보를 지지하고 있는 6개 인터넷사이트에 대해 취해진 폐쇄조치에 대해 네티즌들이 크게 반발하면서 사이버공간이 시끌벅쩍하다.

선관위는 이들 인터넷사이트들이 홈페이지에 특정후보에 대한 지지호소문을 게재하고 회원들과의 모임을 통해 특정후보 지지결의를 하는 등 선거운동을 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더구나 전국적 조직망을 가지고 특정후보를 지지하는 회원을 모집하는 등의 홈페이지활동은 선거법 제89조 2항의 「불법 사조직」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선관위는 만일 폐쇄명령에 불복할 경우 공권력을 동원해 강제폐쇄절차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같은 결정이 내려진 직후부터 선관위의 홈페이지에는 비난의 글이 쏟아지고 있다. "행정편의주의에 사로 잡혀 국민의 정치참여를 방해하는 선관위부터 해체하라", "세월을 거꾸로 가는 선관위의 태도는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 "누구를 좋아한다는 의사표현의 자유도 선관위가 관리하는가", "돈 덜 쓰는 미디어선거 하자더니 인터넷은 미디어가 아닌가" 등등 온갖 내용의 글들이 「자유토론방」에 올라오고 있다.

노사모측은 즉각 기자회견을 열어 "자발적인 네티즌들의 모임을 폐쇄하는 조치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정치적 판단에서 폐쇄한다면 우리는 다른 인터넷상에서 수천개의 새 사이트를 만들 것"이라고 반박하며 정면대응을 선언했다.

민주당도 성명을 내고  "노사모는 정치개혁과 국민통합을 바라는 국민들의 여망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발적인 단체인데도 이를 마치 정체가 불분명한 무슨 산악회와 같은 수준에서 기계적 잣대를 들이대는 선관위의 행위는 국민을 우롱하고 무시하는 처사"라고 비난했다. 한나라당은 선관위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취해 대조를 이루었다.

신문사의 인터넷 독자투고란에도 많은 글이 쇄도하고 있다. 한 네티즌은 "일반적인 사조직과 인터넷 지지자 모임을 구분하지 않고 법 조항만을 들어 몰아세우는 것은 부당하다"며 "이번 결정은 새로운 정치문화가 자리잡으려는 때에 찬물을 끼얹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인터넷 지지자 모임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번 조치는 현행법이 시대를 따르지 못해 빚어진 난센스"라고 주장한 네티즌도 있다.

선관위의 결정을 두둔하는 의견도 없지 않다. 어떤 네티즌은 "인터넷을 통한 대선후보 팬클럽은 새로운 선거문화로 회자되며 자발적으로 태동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시간이 갈수록 그 순수성을 잃고 상대후보에 대한 비방 등에 지우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각 후보나 언론사의 홈페이지의 게시판을 보면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깨끗한 정치문화와는 동떨어져 있다"며 "이번 결정은 상대방을 흠집 내거나 헐뜯는 사이버테러에 대해 철퇴를 내린 셈"이라고 했다.

많은 네티즌들의 인식이나 생각과는 달리 선관위에서 대선후보 지지사이트에 대해 이처럼 무거운 조치를 내린 것은 현행 선거법이 새로운 조류로 떠오른 인터넷 선거운동과 크게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인터넷시대의 변화된 정치·사회적 양상이 현행 선거법에 제대로 반영돼 있지 않다는 뜻이다.

현재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에 대해 현실세계의 잣대로 판단한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선거운동과 관련해서는 현행법이 고쳐지지 않는 이상 이 같은 문제는 계속 불거지게 마련이다.

무슨 법이든 그 법이 제정된 정신을 살리려면 현실에 맞도록 고쳐지고 운용돼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관계당국은 더 이상 현행법이나 제도만을 고집하지 말고 하루빨리 인터넷시대에 맞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할 것이다.

- 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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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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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월간 인터넷라이프 편집인.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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