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11월 21일 No. 549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 딴 글 보기 | 손님 칼럼 | 의견함 | 구독신청/해지 | columnist.org |
'치는' 시대, '쓰는' 시대

'치는' 컴퓨터 시대에서 '쓰는' 컴퓨터의 시대로 넘어가게 된다고, 다시 말하면 컴퓨터에서 글자판이 사라진다고, 이른바 '태블릿PC'를 만들고 파는 사람들은 호들갑이다. 이 달 7일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대대적인 홍보와 함께 출시되면서 이 물건에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다. 이를 보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지난 날 '쓰는' 시대에서 '치는' 시대로 넘어가면서 많은 사람이 겪던 글자판 공포증 또는 글자판 혐오증이다.

1980년대 중반, 컴퓨터가 신문 제작에 처음 도입될 때 신문사 공무국 직원들에게 이는 악마의 저주 같았다. 활자 주조하는 기계를 돌리던 직원들의 일자리가 없어졌다. 기자들의 육필 원고를 들고 활자를 고르던 직원들은 새잡이로 컴퓨터 글자판을 익히고 속도 타자 연습을 해야 했다. 새 일을 익히기가 어려워 일부는 정든 직장을 떠났다.

1990년대 초, 악마의 저주는 편집국에도 닥쳤다. 책상마다 개인용 컴퓨터가 놓였다. 기자들은 기사 원고를 컴퓨터로 손수 입력해야 하는 것이 쉽지 않아 불평이 많았다. 극소수 고령층이 새 물결을 혐오하고 외면했지만, 뉴스를 다루는 일에는 손보다 머리가 중요했으므로 그럭저럭 넘어갔다. 그러나, 입력의 수고를 딴 사람이 대신해야 했기에 마음이 편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쓰는' 시대에서 '치는'시대로 넘어갈 때의 충격은 작은 것이 아니었다. 그 때, '쓰는' 컴퓨터가 나왔다면 고통은 줄어들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태블릿PC 같은 것이 있었다 할지라도 그 사용은 일부에 국한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쓰는' 컴퓨터의 필기 인식 성능은 다년간 개선돼 왔으나 지금도 기껏해야 90% 수준이고, 무엇보다도 '쓰는' 것이 '치는' 것의 속도를 이기지 못한다.

타자기를 쓰던 시절, 정보기관이 북한 라디오 방송 내용을 따라 적을 때 필기하지 않고 타자기를 썼다. 타자하는 편이 훨씬 빠르기 때문이다. 숙달된 사람의 타자는 필기보다 4~5배 빠르다고 한다. 기자들도 처음에는 서툴러 투덜대다가, 얼마 뒤에는 컴퓨터가 없으면 글이 써지지 않는다고 말하게 되었다. 부피가 작아야 하는 PDA에는 글자판이 없는데, 입력이 불편하다고 글자판을 나중에 굳이 사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컴퓨터에서 글자판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할 듯하다.

그래도 '쓰는' 컴퓨터에는 무시하지 못할 강점이 있다. 가령, 사건기자가 사고 현장의 약도를 그려 보낼 때 아주 편리하다. 글자판을 떼면 무게가 가벼워져 휴대도 편하다. 여기에 앞으로 음성 인식 기능까지 들어가게 된다니까, 급박한 현장 상황을 그림을 그리면서 말로 설명하면 곧바로 무선으로 인터넷에 연결돼 편집국 데스크에 문서로 전달될 것이다. 회진 의사나 현장답사 연구자 같은 이도 태블릿PC를 지니고 있으면 편리한 점이 많을 듯하다.

태블릿PC는 전통적인 글자판을 쓰지 않거나 덜 쓰는 컴퓨터다. 모니터에 바로 글을 써서 그대로 저장할 수 있고 디지털화 문서로 전환하거나 이메일로 보낼 수 있다. 글자판을 꼭 쓸 필요가 없을 때는 분리할 수 있는 모델도 있다. 글자판에서 해방된 컴퓨터라고 할 수 있다.

이 새로운 컴퓨터의 출현으로 벌써 중고 서브노트북 컴퓨터 값이 내리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있긴 하지만, '쓰는' 컴퓨터가 '치는' 컴퓨터를 완전히 내몰게 되리라는 것은 과장된 예측인 듯 싶다. 글자판의 강점은 많고 이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이제는 많다. '치는' 것과 '쓰는' 것의 구별이 희미해지는 시대가 온다고는 말할 수 있겠다.

- 대한매일 <인터넷 스코프> 2002.11.21


-----
박강문
http://columnist.org/parkk
칼럼니스트

c o l u m n i s t @ c o l u m n i s t . o r g
http://columnist.org

[칼럼니스트]를 이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