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11월 14일 No. 543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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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화 군락지 살리자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 선생님/열아홉 살 섬색시가 순정을 바쳐/사랑한 그 이름은 총각 선생님/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가지를 마오’

어느새 30여년이 훌쩍 지난 군대생활 시절,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을 구성지게 잘 불렀던 전우가 있었다. 전남 흑산도가 고향인 그 전우는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입대한 '총각선생님'으로 눈을 지그시 감고 부르던 그의 노래를 들을 때면 해당화 핀 섬마을의 정경이 그려지곤 했다.

바다와는 먼 소백산 산자락아래 읍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필자는 해당화를 잘 몰랐다. 해당화는 바닷가 모래땅에서 흔히 자라는 꽃이기 때문이다. 모래밭에 핀 해당화를 제대로 본 것은 몇년전 충남 태안군에 위치한 신두리 사구(砂丘·모래언덕)를 취재하면서다. 신두리 사구는 오랜 세월 동안 북서풍을 타고 온 모래가 육지에 쌓이면서 사막처럼 형성된 특이한 지역이다.

신두리 사구에는 생태계 변화가 한창이었다. 모래언덕엔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들풀이 무성하게 자라 모래 초원으로 변했고, 나팔꽃을 닮은 갯매꽃과 갯완두를 비롯, 희귀식물 사이에서 빨간 해당화는 요염한 자태로 유혹의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술이 덜 깬 양귀비가 자신의 붉은 얼굴을 해당화에 비유했을 만큼 해당화는 고혹적인 선홍빛을 띠고 있으나 흰색도 있다. 해당나무·해당과(海棠果)·필두화(筆頭花) 등의 또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는 해당화는 5∼7월에 꽃이 피고, 이른 봄 어린순은 나물로도 먹고 뿌리는 당뇨병 치료제로 쓰인다.

원형이 잘 보전돼 있는 신두리 사구는 지난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됐고, 모래언덕 내 습지도 환경부가 '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지정할 방침이다. 멸종 위기에 있는 금개구리를 비롯해 표범장지뱀, 무자치, 갯방풍 등 다양한 식생이 보전되고 모래언덕을 아름답게 수놓는 해당화 무리도 볼 수 있게 됐다.

화진리 군락지도 고사위기

우리나라 해당화 군락지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안면도 꽃지해수욕장은 봄이면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고 여름이면 모래언덕에 뿌리를 내린 해당화가 줄지어 핀 '꽃해변'이어서 꽃지라는 아름다운 이름이 붙여진 곳이지만 요즘은 해당화를 볼 수 없다. 올 봄 국제꽃박람회가 열리면서 주변은 옛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변했고, 유채와 각종 서양 꽃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경북 포항 화진리 해당화 군락지도 훼손되고 있어 안타깝다. 해당화가 관상용이나 당뇨병에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일부 주민이나 약초 수집상들이 뿌리 채 뽑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2000년 해안도로 공사로 크게 훼손됐고, 인접지역의 건축 허가로 남은 군락지 마저 고사위기에 처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포항 영일만에서 울진까지 이어지는 경북 바닷가를 아름답게 수놓던 해당화가 지금은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

지난 9월18일 남북에서 동시에 착공된 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공사 지역인 통일전망대 북쪽 해안 모래언덕지역에서 최근 1만여평 규모의 잘 보존된 해당화 군락지를 발견했다고 한다.

파도와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모래가 해안에 쌓이면서 만들어진 동해선 사구의 해당화 군락은 남한지역에서 보기 드물게 잘 보존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원산 명사십리와 태안반도 신두리 사구와 함께 3대 군락지로 꼽힐 만한 규모라는 것이다. 해당화 군락지 뿐 아니라 동해안 민통선·비무장지대 세 곳에서 해안 호수인 석호(潟湖)와 습지도 발견돼 생태계의 보고임이 다시 한 번 입증됐다.

동해선 철도·도로 연결공사 환경생태공동조사단은 9월 중 두 차례에 걸쳐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지역을 실사한 결과 이들 희귀 생태계와 지형이 복원 예정인 철도와 도로에 인접해 있어 노선변경 등 보존 대책이 시급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업의 편의성만 따져 공사를 진행한다면 세계적으로 가치가 있는 비무장지대 생태계는 곳곳에서 단절되고 말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건설교통부는 노선을 바꾸려면 남북간 회담을 다시 해야하는 등 절차가 복잡하고 시일이 많이 걸려 사실상 노선변경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 대신 습지통과 구간은 교량으로 건설하고 동물이동통로와 생태터널을 만들어 환경과 생태를 보존하겠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습지에 시멘트 교각을 세우려면 주변환경이 훼손되고 시멘트 교각 부근의 생태계 변화는 불가피하다. 도로는 동물들에겐 '죽음의 길'이다. 야생동물들의 '횡사'를 막기 위해 전국 곳곳에 개설한 이동통로는 위치선정 잘못 등으로 동물들이 외면하는 등 문제점이 드러났다.

남북 함께 보존대책 세워야

충분한 환경영향평가를 거치지 않고 지난 1년 동안 수수방관하다가 동해선 공사강행을 지켜만 보고 있는 환경 당국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10월 남북연결도로에 대한 첫 환경실태조사를 했지만 곤충에 대한 조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고 남북합의 이후에야 부랴부랴 재조사에 착수해 사계절에 대한 생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동해선 공사는 공사전체의 설계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설계완료 부분부터 검토를 한 뒤 승인하여 공사를 착수하는 패스트 트랙(Fast-Track)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노선결정부터 환경 조사단의 의견을 반영할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 환경 당국의 설명이다. 건설교통부는 갈 길이 바빠 환경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투고, 환경부는 환경영향평가 시늉만 한 것으로 비춰진다.

한반도의 등뼈인 백두대간이 산허리마다 허연 속살을 드러내고, 동·식물의 마지막 피신처인 비무장지대(DMZ) 조차 위협받고 있다. 50년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비무장지대는 생태계의 보고(寶庫)로 '한반도의 허파구실'을 할 만큼 자연환경이 잘 보존된 지역이다. 남과 북을 잇는 도로는 통일의 지름길로 당연히 서둘러야 하겠지만 한 번 파괴된 환경을 복원 하기는 어렵다. 남북한이 공동으로 보존가치가 있는 자원을 조사해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하고 도로와 철도는 예정 노선보다 내륙 쪽으로 더 옮겨 연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사진기자협회보 11월호> (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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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http://columnist.org/kyoos
Florist Meister Schule 기획이사
시인 ·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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