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11월 9일 No. 541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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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는 또 다른 이름의 행복

필자가 어렸을 적 시골마을의 잔칫날은 동네잔치가 되어 친인척 가릴 것 없이 도왔다. 잔칫집 손님들을 맞기 위해 옆집까지 방을 말끔히 청소하고, 멍석과 그릇을 빌려주고, 쌀이나 술, 닭이나, 나뭇짐 등 형편에 따라 미리미리 부조를 했다.

마당에는 큼직한 가마솥을 걸고 돼지고기를 삶고 솥두껑을 잦혀놓고 들기름을 발라 두부전, 녹두전, 배추전을 부치느라 동네 아주머니들은 분주했다. 아이들은 솥두껑 언저리를 맴돌다가 어머니가 챙겨주는 부침개를 얻어 물고 잽싸게 골목으로 달아나기도 하고, 돼지 오줌보에 바람을 불어넣어 만든 공으로 축구를 했다.

마당에 멍석을 깔고 차일을 친 초례청에 사모관대를 한 신랑과 연지곤지 찍은 신부가 맞절을 하고 합환주를 마시며 혼례식을 치르는 풍경도 아련하지만, 가마솥에 푹 끓인 멸치국물에 말은 잔치국수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혼례식뿐만 아니라 환갑이나 생일잔치 때도 마을사람들은 팔을 걷어 부쳤다.

예식장과 대형음식점이 들어서면서 옛날의 잔칫날 풍경도 추억 속으로 사라졌고, 마을 사람이 한 데 어울려 돕던 상부상조 정신도 엷어졌다. 그 뿐 아니라 농사를 지을 때 서로 협력하여 공동 작업을 하던 '두레농사'도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다. 여럿이모여 일을 하면 작업 능률이 오르고 즐겁게 일 할 수 있어 힘도 덜 들었다. 이 논에서 저 논으로 옮겨 갈 땐 두레패가 연주하는 날라리, 꽹과리, 징, 장고 등이 어우러진 농악에 어깨를 으쓱거리거나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했다. 그래서 두레농사를 '두렛일'이라고도 했다.

장애인들 부축한 아름다운 손길

'두레마을' 등 종교적 색채를 띠는 공동체들은 곳곳에 있다. 인간과 환경이 조화를 이루는 유기농법 등을 실천하고 환경개선에 앞장서면서 조직적인 환경운동까지 펼치는 '생태공동체'가 늘고있지만 두렛일은 점차 사라져 아쉽다. 영농기계화에 새마을정신인 상부상조의 미덕이 희박해진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인정해 주거나 칭찬해주지 않아도 묵묵히 남의 일을 돕는 자원봉사자들의 아름다운 손길이 있어 삭막한 세상을 훈훈하게 해준다. 지난 1일 막을 내린 '2002 부산아·태장애인경기'대회에서 장애인들이 펼친 '인간 승리'의 휴먼 드라마와 함께 그들을 부축한 가족과 감독과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희생은 감동적이다.

양궁에서 금메달을 딴 지체장애인 이홍구 선수는 승리의 영광을 아내에게 돌렸다. 스포츠광이자 패션모델을 꿈꾸었던 이씨는 오토바이 사고로 하반신 장애자가 됐다. 절망을 딛고 일어서게 한 사람이 바로 아내가 된 자원봉사자다. 이번 대회에서 남편 뒷바라지는 물론 운영요원과 양궁 심판을 맡아 장애인 모두에게 희망의 촛불을 밝혔다.

시각장애인 홍득길 선수가 높이뛰기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것도 가슴 뭉클한 인간승리다. 땅에 떨어져 머리를 부딪쳐 피를 흘리는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끝에 감독의 손뼉을 신호 삼아 힘차게 솟구쳐 바를 넘었다. 보이지 않는 바도 넘었지만 진짜 넘고 싶은 건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편견이라는 그의 일갈이 비수처럼 가슴에 와 꽂힌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평등과 화합을 추구한다'는 것이 이 대회의 슬로건이다. 장애인들이 원하는 것은 일회성 박수 갈채가 아니라 비장애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고 싶은 것이다.

아시안 게임 성공의 주역이었던 시민 서포터스들이 장애인대회에서도 다시 한번 봉사정신을 발휘한 것도 돋보인다. 민간 항공사들이 일부 수익 노선 운항까지 포기하면서 외국 장애인들의 입국을 도운 것이나, 공항에서부터 선수촌까지 릴레이로 장애인들의 이동을 도운 경찰의 봉사도 고마운 일이다.

'자원봉사활동지원법' 국회서 낮잠

특히 곰두리차량봉사대의 활동은 이번 대회를 더욱 빛나게 했다. 장애인들의 고충을 누구 보다 잘 아는 장애인들의 봉사단체인 곰두리차량봉사대는 88장애인올림픽 때 처음 결성된 뒤 장애인행사가 있을 때마다 장애인의 다리노릇을 해왔다. 40여명의 회원들은 수송해 달라는 연락을 받으면 곧장 경기장으로 달려가 선수들을 숙소로 이동시켰다.

자원봉사는 말 그대로 대가성 없는 자기희생이자 더불어 사는 삶의 원동력이다. 장애인이나 불우 이웃을 돕다보면 그들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고 사회에 기여한다는 자신감을 얻는 것이 자원봉사의 기쁨이자 또 다른 이름의 행복이다.

우리 주변엔 자원봉사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너무 많다. 자원봉사는 갈수록 그 비중이 높아지고 민간의 자발적인 참여가 크게 늘면서 조직적이고 효율적인 관리가 절실해지고 있다. 자원봉사자의 참여를 필요로 하는 사업 주체와 자원봉사자들을 연결해주고 기능별로 배치해주는 등의 치밀한 조직관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자원봉사활동지원법'안은 언제쯤 잠에서 깨어나 '활동'을 시작하려는지….

- <새마을신문> (2002.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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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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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rist Meister Schule 기획이사
시인 ·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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