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11월 6일 No. 540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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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사회 노인 갈곳이 없다

지난달 3일 종로거리를 '실버 인파'가 점령했다. 빨간색 조끼를 입고 고깔모자를 걸친 할아버지 할머니 3천여명이 풍물패의 가락에 덩실덩실 춤을 추거나 아이들처럼 즐거워하며 세상의 중심에서 신명을 냈다. 조계사에서 출발한 노인행렬은 탑골공원∼종로5가∼이화동 로터리를 지나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까지 3.4㎞를 거뜬히 걸었다. 뭔가를 해냈다는 자신감이 노인들의 주름진 얼굴에 가득 넘쳤다. '우리가 걸으면 세상이 열린다'라는 주제로 열린 노인걷기대회 풍경이다.

서울노인복지센터가 경로의 달 10월을 맞아 1일부터 열흘간 개최한 '만남과 미래를 여는 가을축제 2002'는 노인들의 힘과 건강함을 과시한 신명난 축제였다. '외국어 노래부르기' '장수 육체미 대회' '인터넷 검색대회' 등 축제 프로그램도 30여개가 넘을 정도로 다양해 대학축제를 방불케 했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축제 마지막 날 '독거노인 100명의 단체미팅'이었다. 다양한 게임을 통해 파트너를 정하는 독특한 행사로 상대방에게 잘 보이려는 모습은 나이를 초월해 순수하고 진지해 절로 웃음이 나왔다.

지난해에도 '너희가 우리를 아느냐'라는 주제로 시화전, 그림전시 등을 열었으나 대규모 축제는 이번이 처음이다. 노인 가을축제는 고령화 사회라고 말만하고 일년 내내 온갖 축제가 열리지만 정작 노인들을 위한 장소와 행사가 거의 없는 가운데 열려 그 의미가 크다. "우리도 이 사회의 일원이다"고 큰 소리로 고함친 느낌이라고 축제의 소감을 밝힌 노인의 일갈은 우리가 말로만 경로사상을 외칠 뿐 노인들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미흡함을 입증한다.

사회학자 라스렛은 노년기를 '제3인생'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는 인생을 4단계로 구분하면서 출생부터 사회진출 전까지를 제1인생, 직업생활 시기를 제2인생, 퇴직 후의 건강한 생활 시기를 제3인생, 마지막 의존생활 시기를 제4인생으로 구분했다.

지금 우리사회는 '제3인생'과 '제4 인생'을 살아가는 인구가 급격히 늘어난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다. 국민의 평균수명이 이미 76세를 넘어서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는 아득한 옛 말이 되고 말았다.

건강한 노동력 활용대책 절실

고령화사회의 지표인 '65세 이상 인구의 비율 7%'는 깨진지 오래다. 유엔은 65세 이상의 인구가 전체의 7%를 넘으면 '고령화사회', 14%를 넘으면 '고령사회', 20%를 넘으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하고 있다. 올 들어서는 노인인구가 7.9%에 약 370만명을 돌파했다. 2020년엔 노인비율이 15.1%에 이르고 평균수명도 80세를 넘길 전망이라 한다. 프랑스가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진입하는 데 115년, 스웨덴이 85년, 영국이 45년이 걸린 데 비해 우리는 19년 만에 고령사회로 바뀌는 놀라운 속도다.

이처럼 고령인구는 급속히 늘고 있는 데 비해 개인이나 사회 모두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더구나 출산율 저하로 젊은층의 비율이 점점 줄고 있어 노인층에 대한 부양여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 10명의 근로자가 1명의 노인을 부양하는 데에도 정부는 예산타령만 하고 있는 실정이다. 2030년쯤 되면 전체인구 가운데 23%를 넘는 65세 이상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15∼64세의 노동인구는 65%가 되어 실제로 근로자 2∼3명이 1명의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지게 된다.

노인 5명 중 1명은 기초생활보호대상자이고, 자녀없이 사는 노인이 최근 20년새 20%에서 50%로 급증할 정도로 무의탁 노인이 늘고 있는 것도 고령화사회의 문제점이다. 이런 노인들에 대해선 정부가 나서서 과감히 지원해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기초생활보장수급자 보다 형편이 나은 차(次)상위 저소득층의 경로연금 지급연령을 69세에서 65세 이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지만 예산의 뒷받침도 불투명하다. 현재 경로연금은 기초생활수급자의 경우 65세 이상에게 월 5만원, 차상위계층저소득노인은 69세 이상에게 월 3만5천원씩 지급되고 있으나 기초생활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무엇보다 노인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일자리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50대에 퇴직당한 사람들도 많아 '제3인생'세대가 넘친다. 65세 이상 중 건강하고 근로욕구를 가진 취업희망자가 최소 40만명에 이른다는 것이 보사연의 자료다. 그들은 건강한 노동력을 갖고 있으며, 과거의 노인들처럼 자녀들에게 그렇게 의존적인 성향도 아니다.

지난달 2일 노인의 날을 맞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노인복지종합대책은 노인들에 대한 기존의 소극적 보호에서 벗어나 경제·사회적 주체로 살아가도록 여건을 마련해주는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방향은 바람직하다. 건강하고 능력있는 노인의 고용을 확대하기 위해 고령자 고용촉진장려금제를 신설하고 모집·채용·해고시 고령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도록 관련법규를 개정키로 했다.

노인들 스스로도 자기개발을

그러나 노인 고용촉진방안은 청년층 실업 해소책 및 기업의 정년단축 움직임과 정면 배치되는 것이어서 조정이 쉽지 않을 것이다. 또 노인 고용촉진책은 장애자 고용의무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정부기관이나 기업에서 '권고 사항'인 고령자 고용비율을 지킬리가 없다. 고령자를 다수 고용하는 기업에 장려금을 주겠다는 정도에 그치고 있어 기업이 고령자 고용비율을 지키지 않더라도 강제할 규정은 없다.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일만큼 중요한 것이 고령인구 활용방안이다. 평생교육·파트타임직장·자원봉사 참여의 확대 같은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는 것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노인 자원봉사활동은 아직 체계적인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제도적 장치나 프로그램이 부족하고 노인들의 실제 참여율도 저조한 편이다. 미국의 65세 이상 노인의 40%가 자원봉사경험이 있는 데 반해 지난 3년동안 자원봉사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우리나라 60세 이상 노인은 6.7%에 불과하다. 저소득 노인에게 취업교육을 시킨 뒤 지역내 공공시설이나 비영리기관에서 봉사활동을 하게하고 이를 통한 소득보전을 해주는 등 다양한 법적 제도적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 고령화사회의 노인복지대책은 발등의 불이다. 김대중 정부 출범이후 수많은 '위원회'가 발족했지만 '고령화사회대책위원회'는 없다. 노인업무의 범 정부적 총괄기구를 설립하여 지속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앞으로는 노인들이 가족이나 사회, 열악한 복지대책에 의존해서 살기에는 너무나 긴 노년기를 보내야 한다. 노인들 스스로도 자기개발을 게을리하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

- <저널뉴코리아 11월호> (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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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http://columnist.org/kyoos
Florist Meister Schule 기획이사
시인 ·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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