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11월 03일 No. 538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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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폐인(閉人)

신세대와 구세대의 견해 차이, 다른 세대에 대한 서로의 이해 부족은 인류의 지식과 역사가 축적되어 온 이래 불가피한 것이 되어 왔다. 자신이 겪지 않은 것은 얼른 이해하지 못하고, 쉽게 공감하지 못하는 인간 특성 때문이다. 5천년 전 이집트의 로제타석에 새겨진 글 가운데 '요즘 젊은애들은 버르장머리가 없다'라는 구절이 여러 번 나온다고 하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좋은 예라 하겠다.

요즘 우리나라 50대 이상이 이해하기 힘든 젊은이들의 행태도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것이 밤낮이 뒤바뀐 올빼미족의 증가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만나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얘기가 밤낮을 거꾸로 사는 자녀들에 대한 불평과 불만이다. 한 세대 전만 해도 그건 집안 망치기 딱 좋은 '못된 버릇'이었다.

그러나 "걱정할 것 없다. 그보다 더한 인터넷 폐인(廢人)을 자처하는 무리가 있다. 그들은 일반 애들보다 훨씬 강도 높은 올빼미족이지만 문제없이 잘 살아가고 있다."라고 하면 더욱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폐인이라는 용어에 놀라고 그런 인구가 굉장히 많다는 데 대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낮에 자고 컴퓨터에 밤새 매달리는 주침야활(晝寢夜活), 하루 세끼를 라면 등으로 때우는 삼시면식(三時麵食)을 하며 일상생활의 대부분을 온라인상에서 보낸다면 더욱 어리둥절해 진다. 그리고 실제로 인성이 망가진 폐인이 아니라 평범한 직장인, 학생들이 대부분이라면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그들은 집안에 들어박혀서 그것도 밤에 모든 일을 처리하기 때문에 자신을 외부에 잘 노출시키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못 쓰게 됐다는 뜻의 폐인보다는 자신을 집과 어두운 밤 속에 가두는 폐인(閉人)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한 명칭이 될 것 같다.

사이버 폐인들은 자기들이 진정한 네티즌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사이버 공간을 누비면서 사소한 것에서부터 각종 사회문제에 이르기까지 강력하게 의사를 표시하고 여론을 형성한다. 그리고 사회의 주요 흐름에 크고 작은 영향력을 행사한다.

여기까지 설명하면 구세대 대부분은 갈수록 요령부득이라는 얼굴이다. 비트(bit)가 지배하는 디지털사회임을 아직 정서적으로 충분히 체득하지 못한 탓이다. 나아가 아침이면 일터로 나가야 하고 밤이면 귀가하는 식의 전통적이고 고정된 시간개념이 무너지고 언제든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24시간 사회'로 가는 과정의 한 현상이라고 덧붙이면 그제야 조금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은 지금 온라인상은 물론 오프라인에서도 적잖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을 탄력적으로 유연하게 사용하는 것도 좋지만 생체시계의 리듬파괴는 여러 가지 문제를 낳을 것이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또 갖가지 비판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일정한 판단은 아직 이른 것 같다. 빠르게 변동하는 사회에서 지금 막 나타난 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보수화하기 마련이고 한정된 틀 속에 갇히기 쉬운 기성세대는 좀 더 지켜보는 여유가 필요할 것 같다.

- 웹진 <인재제일> 11,12월호(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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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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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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