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10월 29일 No. 535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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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9일 [그해오늘은] '48시간'을 위하여



3.1운동과 5.4운동이 일어난 1919년은 한국과 중국만을 위한 기미년은 아니었다. 그 해 오늘 워싱턴에서 열린 ILO(국제노동기구) 창립총회가 '주48시간 노동'조약을 가결함으로써 전세계 노동자를 장시간 노동에서 해방시킨 해이기도 했다.

3.1운동이 1차대전의 종전에 따른 민족해방의 분위기를 반영하듯 ILO 결의도 당시의 이상주의를 반영하고 있다.

ILO 결의에는 그 2년전에 일어난 러시아 혁명의 분위기가 깔려 있는 점이 다소 다르다.

3.1운동이 선언으로만 끝나듯 주48시간 노동제가 실천되지 못한 채 잠적한 것도 비슷하다.

바로 그 회의가 열린 미국에서도 주48시간 노동은 20년 가까이 지난 38년 무렵부터 겨우 실행되기 시작했다.

그것도 조약의 정신을 지켜서라기보다는 대공황을 맞아 노동자의 일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한 뉴딜정책의 일환에서였다.

다만 3.1운동이나 5.4운동이 제국주의적 폭력의 위험을 무릅쓴 것과 달리 워싱턴의 ILO 회의는 만찬속에 이루어진 것만 같다.

물론 그것은 근시안적인 시각으로 '48시간'을 위해 그 때까지 노동자들이 걸어온 험난했던 과정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1886년 5월 시카고에서 48시간 노동을 내건 노동자들의 집회가 유혈사고로 끝난 것은 그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이 사건은 경찰 7명이 죽고 노동자 100여명이 사상하고 5명이 사형당한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당시 희생된 경찰들을 기념해 시카고의 중심가에 세운 동상이 계속 수난을 당한 것이다.

노동시간이 48시간을 넘어 44시간으로 줄어든 70년에도 그 동상은 폭탄세례를 면치 못했다.



- 세계일보 2002.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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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평 (梁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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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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