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10월 25일 No. 533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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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햏햏' 현상

'지금 한 유령이 사이버공간을 배회하고 있다. '아햏햏'라(이라)는 유령이 근엄하기만 한 국어 사용법, 기성세대의 낡고 진부한 아날로그 시각, 숨막히는 오늘의 '아햏햏'한 현실과 맞서고 있다. ...전국의 네티즌들이여 단결하라' 1848년 유럽을 배회하던 어느 유령처럼 지금 사이버공간에는 뜻도 발음도 일정하지 않는 '아햏햏'가(이) 그와 비슷한 형태로 거침없이 떠돌고 이에 대한 네티즌들의 열광은 폭발적이다.

'썰렁하다' '엽기적이다'라는 말의 자리를 급속히 침식하며 하루가 다르게 세력을 확장해 가는 이 말은 아직 하나의 유행어이다. 유행어는 어떤 계기를 맞아 한 동안 즐겨 쓰게 되는 낱말, 또는 그런 문구나 글로 말 자체의 재미, 발생상황에 대한 관심과 함께 폭발적으로 퍼진다. 의미나 용법이 불안정한 것이 많으며 곧 사라지거나 정식 어휘로 정착되기도 한다.

'아햏햏'가(이) 언제 어떻게 소멸할지 아니면 새로운 낱말로 정착할지 여부를 지금으로서는 점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종전의 유행어 생성, 활동 과정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한 네티즌이 어느 사이트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멋쩍은 듯한 웃음을 표현하려다 오타로 괴상한 글자를 찍고 말았는데 네티즌들이 오히려 이를 반기고 공감하며 걷잡을 수 없이 뜨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읽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아햏햏'의 받침 'ㅎ'이 'ㅅ', 'ㄱ', 'ㅇ' 등 세 가지로 발음돼 '아해해' 외에 ‘아햇햇’‘아핵핵’'아행행'이라고도 한다. 국어 교과서가 질겁할 노릇이다. 그래도 네티즌끼리는 그 차이를 분명히 안다.

뜻에 이르면 더 더욱 어지럽다. 명사 동사 형용사 감탄사 역할을 모두 해내 어이없을 때, 비웃고 싶을 때, 즐거울 때, '엽기적인' 느낌을 받았을 때, 열 받았을 때 등 어디에서나 사용해도 통하는 것이다. 육체의 은밀한 부분을 지칭하는 뜻에서부터 대명사 동사 형용사 등으로 광범위하게 쓰이는 '거시기'라는 말의 무정형성과 비슷하다.

유행어나 은어는 특정 언어대중을 결속시키는데 '아햏햏'는(은) 그 정도가 아니다. 마치 신흥종교 교도들처럼 '아햏햏' 생성 사이트의 주인을 '햏수'로 모시고 자신들은 '햏자'라 부르며 유대감과 동질성을 과시한다. 자기들끼리 '아햏햏' 티셔츠를 만들어 입는데 이것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관련업자들이 입질을 할 정도다. 이들의 특징은 정치에 무관심하고 권위적, 보수적인 것에 대해 반감이 심하다.

'아햏햏' 태풍이 상륙하자 관계 전문가, 시민들의 반응은 호감 거부감 무관심 등으로 다양하다. 그 진로와 수명은 정확히 예측할 수 없지만 '아햏햏'한 현실에 침을 뱉으며 힘을 과시하는 '햏자'들을 주목하는 눈은 매우 많다. 아울러 이왕이면 새롭고 긍정적인 바람이길 바라고 있다.

- 웹진 <인재제일> 9.10월호 (2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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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http://columnist.org/ynhp

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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