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10월 24일 No. 532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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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지름길, 바뀌는 세상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1990년 하버드 대학교의 중앙도서관인 와이드너 도서관 정문과 후문에는 늙수그레한 이가 지켜서서 출입하는 학생들의 가방을 하나하나 조사했다. 출입구에 전자감응장치를 하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가방 조사하는 이들이 직장을 잃기 때문에 설치를 미루고 있다는 것이었다.

가방을 조사당할 때마다 새 기술의 도입과 그 영향을 생각해 보고는 했다. 그 때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은 영국에서 19세기초에 일어난 러다이트 운동이었다. 노동자들이 전국적으로 일으킨 기계파괴 운동이었다. 주모자가 러드라는 사람이라고 해서 러다이트 운동이라고 불렸으나 가공인물이었다. 노동자들의 격렬한 반기계운동에도 불구하고 기계화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새 기술의 수용이 언제나 환영받는 것은 아니고 때로는 커다란 저항을 받기도 한다. 근년의 사례로는 음악 파일의 공유 문제를 둘러싼 소동을 들 수 있다. 미국의 냅스터 사이트가 저작권법 위반을 들고 나온 음반업자들의 제소로 서비스를 그만두었고, 그와 비슷한, 국내의 소리바다 사이트가 법원 결정에 따라 올해 7월 31일 음악 파일 공유를 위한 검색 서비스를 중단했다. 항의하는 네티즌들의 소리가 높았지만, 법은 법이었다.

소리바다는 이제 메인 서버를 거치는 방식을 쓰고 있지 않다. 업그레이드된 무료 프로그램 '소리바다2'를 내려받으면 메인 서버를 거치지 않고 사용자들끼리 음악 파일을 주고받을 수 있다. 음악 파일 공유의 기회가 사라질 것을 걱정하던 젊은이들에게는 일대 희소식이지만, 이마저 음반산업계가 가로막고 나올 가능성이 없지 않다.

냅스터나 소리바다는 어떤 점이 좋은가. 첫째, 원하는 곡을 쉽게 그리고 공짜로 구할 수 있다. 둘째, 이용자 스스로 마음에 드는 곡들만으로 앨범을 만들 수 있다. 셋째, 정보 공유라는 네티즌의 이상에 맞는다. 이렇게 신나는 해결책, 좋은 지름길을 알게 되고나니 그 길로 가지 말란다고 해서 돌아가기는 어렵게 된 형편이다.

음반산업계의 반발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음반(요즘은 주로 CD지만) 판매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냅스터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 때, 미국 대학가 음반가게가 실제로 한산해졌다. 복사해도 음질에 손상이 없는 MP3 압축재생방식의 우수성과 무료로 음악 파일을 주고받는 시스템이 결합하는 것은 두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카세트 테이프 녹음기의 보급으로 음반 판매가 줄어들 것이라고 음반 산업계는 걱정했지만, 오히려 음악 산업을 엄청날 정도로 팽창하게 했다. 반대와 금지가 아닌 흡수와 이용의 방법은 없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소비자의 욕구를 등한히 할 수 없다. 현재 음반 가게에서 고객의 요구로 곡목을 골라 편집해 주는 것은 불법이지만 이것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은 고려해 볼 만하다.

이용자들끼리 음악 파일을 공유하는 것은 단속하기 어렵고 공유 바람은 자지 않을 것이다. 음반업자들이나 음악가들에게는 좋은 시절이 끝나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관적으로 볼 수만은 없다. 방대한 양의 음악 CD나 DVD를 갖추고 유료로 빌려주거나 편집해 주는 음악도서관이 여기저기 생길 수도 있고 이를 통해 판매가 촉진될 수도 있을 것이다.

새 기술은 세상을 바꾼다. 컴퓨터가 타자학원의 간판을 내렸고, 성능 좋아지고 싸진 휴대전화가 잘 나가던 무선호출기 업체의 문을 닫게 했다. 새 기술은 달음질칠 것이다. 새 기술을 계속 반대하고 법의 힘을 빌어 막는 것이 쉽지 않게 되는 때가 올지 모른다. 편의성과 경제성이 크면 법적 강제력이 누르는 것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 대한매일 <인터넷 스코프> 2002.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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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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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대한매일 명예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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