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10월 19일 No. 528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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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장식 분야도 국가자격증을

인간이 꽃과 더불어 생활한 것은 문자가 있기 이전부터다. 원시인들은 자기의 부족을 상징하는 꽃을 머리에 꽂거나 거처하는 곳을 꽃으로 장식했다. 인간의 의식주와 신을 위한 영적 목적에서 출현하기 시작한 우리나라의 꽃꽂이 역사도 뿌리가 깊다. 자연발생적인 토속신과 인간 사이의 매개역할을 한 사람이 무속인이었고 그들이 굿을 할 때 제단 위에 놓거나 손에 쥐고 흔드는 꽃과 나뭇가지는 오늘날 꽃꽂이 재료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꽃을 바치는 의식은 서기 372년 불교가 전파된 시기와 거의 때를 같이 했고, 제단에 생명력이 강한 연꽃을 꽂는 의식이 성행했다. 꽃을 화병에 꽂을 때 대칭법과 삼존형식이 드러나는 등 이 때부터 꽃꽂이의 조형미를 갖추기 시작한 시기로 유추할 수 있다. 신라의 막새 기와에 부조로 된 공화(供花)에 나타난 꽃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다. 그러면서도 꽃봉오리의 높낮이와 선과 선 사이의 공간이 깔끔하게 처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로 접어들면서 제단에 꽃을 바치는 의식은 줄어든 반면 장식예술로서 꽃꽂이가 발달했으며 꽃을 화분에 담아 감상하는 풍습도 생겼다. 머리·모자·옷깃에 장식으로 꽂았던 꽃을 화병에 꽂아 자연스럽게 생활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조선시대 때는 꽃꽂이·분재·분경 등을 다루는 서적이 나올 정도로 급속한 발전을 이뤘다. 세종 때의 명신 강회안의 '양화소록'을 비롯, 정다산, 이규경, 서유구, 허균 등 실학자들의 저작들은 꽃 변천사의 중요한 자료들이다. 정원 양식 속에 꽃꽂이를 자유롭게 묘사하여 실내를 장식한 모습은 '오륜행실도'에 드러나 있다. 이 때부터 꽃꽂이가 공간 조형예술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꽃무늬를 채색한 화병에 꽃을 꽂거나 병 꽃꽂이의 높이나 넓이, 폭이 서서히 정립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전통 꽃꽂이의 역사가 이처럼 유구한 것은 우리 민족이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농업과 종교, 회화·도예·조각·건축에 이르는 폭넓은 분야에서 꽃을 응용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광복 후 한국 전쟁 등 사회적 혼란을 겪으면서 꽃꽂이는 침체기를 맞았다. 60년대에 접어들면서 꽃꽂이 연구가들에 의해 활발한 개인전이 열리면서 다시 꽃꽂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생활이 넉넉해지고 여가문화가 발달한 요즘은 꽃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집안이나 사무실에 꽃을 꽂아 장식하는 것은 생활의 일부가 됐다. 한국의 꽃 문화가 서구적 디자인과 이론(理論)을 도입하면서 꽃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작업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문화의 달 10월을 맞아 꽃꽂이 작품전이 곳곳에서 열려 가을을 아름답게 채색하고 있다. 그 가운데 서울 성북동 '플로리스트 마이스터 슐레(한-독제휴꽃예술가학교)'에서 열린 '플로리스트 2002 작품전'은 작품 테마의 다양함과 표현 기법의 독창성으로 눈길을 끌었다.

전시회 출품작가들은 독일 상공부(IHK)의 심사를 거쳐 독일국가공인 플로리스트 자격증을 획득한 플로리스트들이다. 꽃과 자연을 재료로 아름다움을 재창조하는 플로리스트는 꽃장식가, 또는 플라워 디자이너로 불린다. 그러나 "그들은 왜 독일연방공화국의 자격증을 받아야 하는가" 라는 의구심이 든다. 물론 꽃 예술분야도 국제화로 발돋음하는 시대 조류에 부응하기 위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독일국가공인 자격증은 필요하다.

문제는 국가가 인정하는 자격증제도에 꽃장식 분야가 없다는 사실이다. 정부가 관리하는 국가기술자격은 기술사·기사 등 622종과 개별사업법에 따른 의사·회계사자격 등 120종에 달하지만 국가공인 플라워 디자인 자격증은 없다. 민간단체에서 시행하는 '플라워 디자인 기능사' 자격증 제도가 있으나 조화 디자이너에 국한돼 있다.

450여종에 달하는 민간자격증은 단순히 능력을 인정하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이중 인터넷정보검색사, 한자능력급수 등 35개 종목만이 국가가 공인한 자격증을 받을 수 있을 뿐이다. 취업을 하기 위해 시간과 정열을 쏟아 민간자격증을 땄다가 취업기관으로부터 인정을 못 받아 낭패를 당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실정이 이렇다보니 수많은 꽃꽂이 학원에서 주는 사범자격증도 공신력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꽃의 미적 가치와 부가가치를 높이는 꽃장식 분야의 폭도 넓어졌고, 꽃을 직업으로 숍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지만 그 기능적 측면을 측정해 자격증을 주는 꽃장식가 자격증제도는 없다. 우리도 독일처럼 학력 위주 보다 기능 위주의 실속형 자격증제도 확대에 눈을 돌려야 할 때다.

- 담배인삼신문 2002.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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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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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rist Meister Schule 기획이사
시인 ·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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