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10월 12일 No. 525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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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의 고개이야기 7> 영월 소나기재

열두 살 어린 나이에 조선왕조 여섯 번째 임금자리에 오른 단종. 그는 수양으로 상징되는 왕족과 집현전으로 대표되는 대신들 사이의 권력암투 희생양이다. 임금자리에 오른 세 해 뒤인 1457년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의금부 도사 왕방연과 중추부사 어득해가 이끄는 군졸 50여명의 호송을 받으며 유배 길에 올랐다.

한 여름으로 접어드는 음력 6월 22일, 단종은 한양을 출발하여 일주일만인 6월 28일 영월 청령포에 도착했다. 단종이 피눈물을 흘리며 거쳐 온 유배 길 700리는 어디일까. 1996년 영월향토사학회 회원 두 사람이 갓을 쓰고 짚신을 신은 채 답사한 적이 있다. 두 사람은 돈화문을 출발하여 천호대교∼팔당대교∼하남시 배알미리를 거쳐 여주군 대신면 상구리 어수정에 도착하여 물 한 모금으로 갈증을 풀었다. 그리곤 초현리의 원통고개와 원주시 부론면 단강리와 귀래면 운남리 뱃재를 넘었다. 다시 발길을 재촉하여 제천시 박달재와 원주시 신림면의 황둔고개를 또 넘었다. 영월군 주천면 신일리의 어음정을 지나 서면 광전리의 군등치와 신천리의 배일치를 힘겹게 넘었고, 영월읍 나들목 소나기재를 지나 청령포까지 7일만에 도착했다.

영월군은 지난 4월에도 단종문화제를 계기로 단종 유배길 재현행사를 펼쳤다. 당시 유배행렬 모습으로 분장한 주민들이 5월 1일 서울에서 집결, 2일 창덕궁 돈화문에서 출발해 경기도 여주 이포리 이포나루∼강원도 원주 부론면 단강리∼영월 주천면 주천나루∼청령포에 도착하는 코스로 4일 동안 걸었다. 참가자들은 단종 1명, 정2품과 정3품급 3명, 병졸 42명, 가마꾼 4명 등 모두 50명이었다.

신림과 황둔을 잇는 황둔고개는 가파르고 험준해 겨울철엔 눈이 조금만 와도 차량통행이 어려웠으나 이제는 터널이 뚫려 수월하게 오갈 수 있다. 황둔에서 영월 방향으로 가다가 처음 만나는 고개가 군등치. 영월군 주천면 거안리와 서면 신천리 사이에 있다. 군등치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굽이굽이 휘어서 올라간다. 고개를 오르면서 단종이 "이 고개는 무슨 고개인 데 이다지도 험한가"라고 물으니 수행하던 왕방연이 "노산군께서 오르시니 군등치(君登峙)라 하옵지요"라고 대답했다. 임금이 오른 고개라 하여 군등치라는 이름이 붙었다.

군등치를 지나면 서면 면사무소가 있는 신천리가 나온다. 단종이 이곳을 지난다는 소문을 듣고 마을사람들이 몰려나와 단종의 행렬을 향해 통곡했다. 그래서 옛 지명은 울 명(鳴)자 벌일 라(羅)자를 써서 명라곡이라 불렀다. 명라곡 마을은 서면 면소재지로 변했다. 배일치(拜日峙)는 신천면사무소와 남면 북쌍리 사이에 있다. 유배지가 가까워지자 단종은 불안한 마음을 가누지 못한 채 서산에 기우는 해를 향해 절을 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영월로 접어드는 들머리에 소나기재가 있다. 조정신하들이 단종 묘를 참배하기 위해 이 고개를 넘을 때는 멀쩡하던 하늘에서 소나기가 쏟아져 내렸다고 한다. 그들은 단종의 원한이 비가 되어 내린다고 여겼다. '육신전'을 펴낸 생육신의 한 사람인 남효온(1598∼1492)도 세상사에 흥미를 잃고 유랑하다가 이 고개를 넘을 때 소나기를 맞았다. 이는 단종의 원한이 서린 것으로 여기고 '육신전' 집필의 집념을 더욱 불태웠다고 한다.

소나기재에 얽힌 전설과는 달리 옛날부터 이 고개엔 소나무가 유난히 많았다. 그래서 소나무 안에 있는 고개라 하여 솔안이재­소라니재­소나기재로 불리게 되었다는 지명풀이도 있다. 지금도 영월 사람들은 장릉쪽에서 쏟아지는 소나기는 더 세차다고 말한다.

소나기재 정상에서 오른쪽으로 100여m 오솔길로 접어들면 70m높이의 선돌(입석)이 보인다. 둘로 동강난 바위가 강 옆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다. 기암괴석 사이로 흐르는 서강의 푸른 물줄기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 선암 또는 신선바위라고도 한다. 옛날 영월부사를 지낸 홍이간이 이곳 암벽에 새겨놓은 '운장벽'이라는 글씨가 아직도 남아 있다. 주변의 고도가 높고 경사가 심해 전망대와 울타리를 설치해놓았다.

소나기재가 끝나는 지점인 영월읍 들머리 영흥리에 단종 능인 장릉이 있다. 열일곱 살에 죽음을 당한 단종의 주검은 강물에 띄워졌다. 아무도 후환이 두려워 거들떠보지 않자 호장 엄흥도가 거두어 암장했다. 중종 11년(1517년) 동을지산 기슭에 초라하게 묻힌 무덤을 찾아냈고 숙종 24년(1698년)에야 왕릉으로 인정받아 '장릉'으로 불리게 됐다.

소년 왕은 죽어 백마를 타고 하늘나라로 갔다고 믿는다. 그를 모시던 한 노충신이 꿈에 나타나 "태백산으로 간다"는 말을 던지고는 사라졌다. 사람들은 태백산에 단종 사당을 세워 지금도 받들어 모시니, 억울하게 죽은 조선국 6대 임금 단종대왕은 태백산신으로 영겁을 산다. 영월에도 곳곳에 단종 사당이 있다.

-2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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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http://columnist.org/kyoos
Florist Meister Schule 기획이사
시인 ·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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