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 실종
아이들 다섯이 집에서 가까운 야산에 놀러간다고 나가서 날이 저물어도 돌아오지 않는다면, 무슨 사고가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다. 부모들이 경찰관서에 신고했으나 경찰은 가출이라고 우기고 당장 수색을 시작하지 않았다. 때늦은 수색에 많은 사람이 동원되었지만 아이들의 종적은 찾을 수 없었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나 아이들의 유골이 그 산에서 발견되었다. 사체나 유골이 발견되면 자살이나 사고사라는 명확한 증거가 없는 한 타살이라고 보고 수사하는 것이 원칙일 것이다. 자연사할 나이가 아닌 건강한 사람이 뚜렷한 증거를 남기지 않고 죽었을 때, 설사 가족이 자살이라고 주장하더라도 경찰은 일단 살인사건으로 보고 사체와 현장을 주의깊게 살펴야 마땅하다.
현장에서 유골과 유품 수습이 끝나기도 전에 경찰관은 아이들이 길을 잃고 쌀쌀한 날씨에 체온이 떨어져 죽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11년이 지났어도 대구 '개구리 소년'들의 실종은 대다수 국민이 기억하고 있는 큰 사건이다. 그런 사건을 대하는 경찰의 자세는 너무 안이했다.
경찰의 경솔을 나무라듯 유골 수습 현장에서는 예사롭지 않은 것들이 불거졌다. 총탄이 나왔다. 죽은 한 어린이의 웃옷 양 소매가 묶여 있었고, 바지 가랑이 또한 묶여 있었다. 그리고 팔뼈 하나가 없었다. 유족들이 제기한 피살 가능성을 경찰은 뒤늦게 받아들였다.
지난 일요일(2002.10.06) 문화방송의 '피디 수첩'을 보면서 경찰관의 태도에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 경찰의 큰 임무다. 비록 지금의 관할 경찰서 경찰관들이 아이들 실종 당시 근무자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이 아이들의 재난을 막지 못한 대한민국 경찰의 책임을 통감하고 그 일원으로서 진지하게 업무에 임했어야 할 것인데 그렇지 못하다는 느낌을 텔레비전 화면 곳곳에서 강하게 받았다.
아이들이 말없는 뼈가 되어 흙 속에서 나오는 동안 유족들은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을 가눌 수 없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경찰관은 '저체온 사망설'을 펴고 있었다. 두 소매를 묶은 옷옷에 대해서는 "추우면 목이 제일 많이 추위를 느끼지 않습니까?" 하면서 마치 아이가 그렇게 하는 것을 보기나 한 듯 설명했다. 부모들이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들의 나이는 서너살도 아니고 아홉살에서 열세살까지였다. 아이들은 지능이 모자라지도 않고 지체가 부자유스럽지도 않았다. 텔레비전으로 봐도 산이 험하거나 계곡이 깊은 것 같지 않다. 경찰관은 아이들 실종 당시 민가가 멀고 계곡이 깊어서 아이들이 길을 잃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말의 설득력을, 죽은 아이의 친구와 산밑 동네 사람의 증언, 실종 무렵의 산 주변 사진이 뒤집었다.
경찰관은 섣불리 동사설을 꺼내 부모들의 아픈 마음을 건드릴 것이 아니라 "비통한 일을 당한 부모님들께 뭐라 위로 말씀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희는 최선을 다해 수사하겠습니다." 했어야 할 것이다. 경찰관들도 자녀가 있을 텐데 같은 부모의 처지에서 측은심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하도 험한 꼴을 많이 보아와 무덤덤해져서일까.
실종 당시 경찰이 가출로 몰고 간 이유를 아이 가족 하나가 말했다. "가출로 해서 보고서 올리면 수사할 책임이 없대요." 유골이 발견되고나서 왜 경찰은 저체온 사망으로 보고 싶었을까. 비슷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살인사건이 아니므로 수사할 책임이 없다. 유골이 놓인 상태를 사진으로 남기지 않은 데서도 경찰의 무성의가 드러난다.
인원은 적고 업무 부담은 많은 경찰의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나, 참으로 아쉽게도 관계 경찰관들에게서는 인간에 대한 애정, 생명에 대한 외경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아직도 차도가 없는 책임 회피 고질병이 느껴졌다.
'개구리 소년' 유골 발견은 전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사건이다. 유골 수습 등 현장 조사를 일개 경찰서에 맡기고 있을 일이 아니라 초장부터 중앙 경찰에서도 나섰어야 할 일이다. 또 높은 분들은 국민을 위해 일한다면 이런 일에 큰 관심을 보였어야 옳다. 이번 일에 관한 한, 국가가 국민에게 너무 무성의하고 냉정했다.
- 2002.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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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문
http://columnist.org/parkk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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