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10월 5일 No. 519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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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읽기

"이 나라에는 미래와 희망이 없다. 자식들을 더 이상 이 곳에서 키울 수 없다. 그래서 떠난다." 외국으로 이민 가는 이들의 이유와 불평을 요약하면 대개 이렇다. 한 마디로 인간답게 살 수 없는 이 땅이 싫다는 것이다.

선진국이나 국제교류가 활발한 나라 사람들은 이민을 가도 그 나라 주류사회에 당당히 끼어 들어 떳떳하게 사는데 후진국 출신들은 다르다. 영국의 인도 파키스탄인, 프랑스의 알제리 모로코인, 스페인의 아프리카 아랍인, 독일의 터키인들이 그렇듯이 미국 일본 등지의 한국교민들도 부당한 차별대우와 편견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한다. 친정이 어려우면 시집살이가 고달픈 것과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그들을 떠나게 만드는 고국,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그들에게 비친 이 나라 모습이 한국의 오늘을 가장 설득력 있게 풀이해 줄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어느 누구보다도 과거와 현재의 한국을 절감하고 이민을 결심했기 때문이다. 타국에서 그들이 얼마나 많은 꿈을 실현했는지 여부는 논외다.

그들을 절망하게 만든 첫째 원인은 이 사회의 불공정성이다. 자유시장경제와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공정성과 완전경쟁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겉만 근대국가이지 속은 아직도 전근대적 속성과 모순들을 그대로 안고 있는 것이다.

가끔 보도되는 중고교생들의 의식조사에서도 드러나듯이 권력과 금력의 뒷받침이 없으면 자기를 실현할 수 없는 곳이 이 사회다. 10대 청소년들한테까지 불공정이 만연한 나라로 보이니 사회생활을 직접 해본 어른들은 오죽하겠는가.

출신지가 같지 않으면 남이고, 같은 학교를 나왔으면 능력 여부와 관계없이 봐주는 것이 당연하고, 같은 피붙이라면 무조건 싸고도는 풍토에서 공정경쟁은 허울에 불과하다. 지역감정은 그 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것으로 지금도 망국의 길로 몰아가고 있다. 이처럼 야비하고 각박한 풍토에서 얼마나 많은 인재들이 절망과 신음 속에 매몰되고 사장되었는가. 돈 없고 빽 없으면 아무리 똑똑하고 제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나아질 것 없는 이 곳에서 자식을 키우지 못하겠다고 그들은 떠난 것이다.

둘째 창의력과 백년대계의 설자리가 좁다.

조선이전의 왕조들은 거대한 중국에 대해 매우 신축성 있게 대응했다. 흔히 조선왕조 5백년이 사대주의에 빠진 부끄러운 역사라고 비난하지만 그건 현상의 한 면만 부각시킨 좁은 시각이다. 중국이라는 상대를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 비난에 불과하다.

고려 이전의 역대 왕조는 중국의 흥망성쇠에 따라 대응했다. 즉 힘의 논리에 의해 그 나라가 강해지면 고개를 숙이고, 약하다 싶으면 우리를 강하게 내세웠다. 민족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대계요 전략이었다. 그 결과 여진 거란족 등 수많은 종족들이 중국이라는 블랙홀에 빠져 자취를 감췄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남아 있다. 중국 주변에 우리말고는 베트남, 몽고 정도가 있을 뿐이다.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야 하는 지정학적 특성은 생존을 위한 민족의 긴 안목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철저한 역사관과 백년대계의 교육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우리 못지 않은 지정학적 여건에서 오스트리아 핀란드 싱가포르 등은 약소국이 아닌 강소국으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 있으면서도 지도층은 사리사욕에 잡혀 싸움질만 해왔고 교육은 아직도 곳곳에서 표류중이다. 과거 조상들이 앞을 내다보던 안목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런 나라에 밝은 미래가 있을 턱이 없다.

또 강소국이 되려면 남다른 창의력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예로부터 남의 것을 빨리 들여다가 소개하고 가공하는 것만 지식이라 믿었고, 그것이 실력으로 평가되었다. 학문이론과 기술 등에서 우리 고유의 것이 거의 없다. 아니 새로운 것을 내놓으려면 외국이론이나 가치를 잣대로 삼아 가차없이 잘라 버리거나 철저히 무시했다.

그러니 항상 열등감과 패배의식 속에서 남의 뒤를 따라가느라 바쁘고 교육은 그걸 부채질한다. 그런 교육이 싫어서 이민을 서두른 것이다.

셋째 지도층은 책임감이 없고 나라와 역사는 웅지가 없다. 건강한 사회의 지도층은 그에 따른 책임(노블레스 오블리제 noblese oblige. 높은 신분에 따른 도덕상의 의무)을 질 줄 안다. 그들은 특히 국가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이를 강력하게 발휘한다. 봉건시대부터 지금까지 그들은 전쟁이 나면 누구보다 먼저 출전, 국민과 사회를 지켰다.

우리는 그 반대다. 전통사회에서 병역의무는 상민에게만 있었고 양반들은 먼저 도망가기에 바빴으며, 한국 건국이후에도 6.25는 물론 오늘날까지 대부분의 돈 있고 힘있는 집 자식들은 군대에 가지 않으려 온갖 병역비리를 자행했다. 또 남북관계가 악화되면 빠져나가기에 급급한 지도층 인사들이 적지 않았으니 이런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지도층이 건전해야 나라의 백년대계가 제대로 자리잡고, 세계로 뻗어가려는 큰 뜻과 꿈이 대대로 이어질텐데 이 모양 이 꼴이다. 독일 오스트리아 예멘 등이 성공한 통일을 우리만 이루지 못하고 있다. 세계 경영은커녕 통일한국의 방향마저 제대로 설정하지 못하고 헤매는 것이 우리의 못난 얼굴이다.

넷째 사촌이 땅을 사면 배아픈 풍토가 문제다. 지도층의 책임감 부재가 치유하기 힘든 고질이라면, 남 잘되는 것 보기 불편한 우리들의 의식구조 역시 서로를 피곤하게 한다. 외세의 침략 등으로 대부분 절박한 상황에서 살아온 탓인지 우리는 남을 잘 믿지 못하고 자기 앞가림만 급급해 왔다. 그럴수록 서로 의지하고 뭉쳐야 할텐데 시기하고 질투한다.

최근 뉴욕의 어느 한인 가게가 팔렸는데 그걸 중국계 1백여 명이 사서 화제가 되었다. 한 사람이 사기에는 부담이 크니 그 많은 인원이 조금씩 돈을 내서 동업을 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친구는 물론 형제간에 동업을 해도 한국인들은 반드시 깨진다는데 중국인들은 그렇게 많은 사람이 같이 해도 끄떡없이 잘 된다고 한다. 그래서 이처럼 여럿이 동업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흔히 있는 일이다. 돈을 대고 조용히 뒤에서 돕는 이를 영어로 silent partner(침묵의 동업자)라고 하는데 중국인, 일본인들은 이 역할을 잘 해내기 때문에 거의 성공한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주인이 되고 싶어하기 때문에 동업이 성공한 예가 매우 드물다.

어떤 일을 놓고 여러 명이 토론할 때 보면 한국인들은 하나하나가 80점 이상의 훌륭한 견해를 내놓는다. 반면 일본인들은 아무리 좋게 쳐도 그 이하가 많다. 그러나 계속 해나가면 일본인들은 90점 이상의 통합 의견을 만들어 내고, 한국인들은 서로 반박하고 깎아 내리다가 60점 이하의 결론을 만들거나 그나마도 못 만들고 깨지는 수가 많다고 한다.

이런 특성들 때문에 모국을 증오하고 경멸하며 떠난 이들이 많다. 그런데 그런 이들 가운데서 많은 이들이 월드컵 기간에 기쁨과 울먹임이 뒤섞인 소리로 고국의 친지들에게 전화를 했다. 조국이 자랑스럽다, 항시 우리를 우습게 보던 주류사회 사람들이 한국을 칭찬해 살맛이 난다, 우리에게 이런 힘이 있는 줄 몰랐다 등등이 그 내용이다. 한국계임을 드러내기 꺼리던 2, 3세들까지도 부모, 할아버지의 나라가 자랑스러워 자신의 핏줄을 당당하게 밝히고 심지어 미국 LA에서는 한인지역의 집 값까지 덩달아 올랐다.

월드컵에서 올린 한국의 성적은 단순한 스포츠의 성과가 아니다. 긴 세월 동안 켜켜이 쌓인 우리의 부정적 요소와 절망들을 단번에 날려버린 것이다. 잘못 포장되고 부당하게 취급되어 왔던 우리 잠재력과 에너지의 본 모습을 세계인들에게 분명히 보여 주었다. 우리 자신도 몰랐던 저력이었다.

그 동안 우리를 괴롭히던 질병 이른바 파벌 불공정 비리 부패 등이 축구라는 틀 속에서 치유됨을 보고 비참하고 가망 없던 조국에 대한 살맛과 희망을 되찾은 것이다. 조국을 가장 객관적으로 민감하게 볼 수 있는 그들이기에 기쁨은 국내인들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유례가 없는 길거리 응원으로 고정관념을 흔들어 놓은 신세대를 보고 그들은 세계인들 앞에서 가슴을 폈다. 항시 주눅들어 살던 그들에게 당당하게 보여줄 우리의 미래를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축구와 신세대를 통해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지 밝고 맑은 사회가 당장 보장된 것은 아니다. 보따리 싸고 이민 가려던 사람들이 발길을 되돌릴 정도는 더더욱 아니다. 모든 약점을 솔직히 인정하고 새롭게 나설 때 우리의 꿈은 이루어질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장대한 희망과 자신감을 낚아 올릴 수 있었다. 개인의 삶, 한 나라의 역사 그리고 스포츠 경기 등에서 자신감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승패의 전환이 거기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은 지금 막 역전의 기회를 잡았다고 할 수 있다.


- 서강대 고교생 레터지 '알바트로스' 가을호(2002.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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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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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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