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9월 28일 No. 516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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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불감증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사람이 바보'라는 말이 있다. 누구든지 살아가면서 숱한 잘못을 저지른다. 몰라서 실수할 수 있고 부주의해서 그르칠 수도 있다. 그러나 다음부터는 그렇지 않도록 주의하고 노력한다. 어리석은 사람만 그걸 금방 잊고 똑같은 실수를 다시 저지르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인간은 지금까지의 모든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여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고 확대·발전시킨다. 그것이 교육과 학습이며, 그 효과에 따라 국가나 개인의 역량과 질이 결정된다. 즉 현명함과 어리석음이 판가름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에 따르면 한국은 정치·경제·사회 등 각 분야의 주요 사안에서 지난날의 실패를 반복, 국가적 바보증세를 심하게 보이고 있다. 즉 학습효과가 지극히 낮은 '학습 불감증'이 사회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고도 그걸 국가와 사회발전의 도약대로 삼는데 실패한 우리가 월드컵축구대회 이후에도 비슷한 조짐을 보이는 것이나, 김영삼 정권이 아들의 비리로 심각한 레임덕 현상에 시달렸음에도 김대중 정권이 그 전철을 밟은 것 등이 좋은 예다. 건국 이후 지금까지 오락가락하는 교육정책 또한 대표적인 학습불감증세이고, 언 발에 오줌누기 식 부동산 대책, 해마다 비슷한 원인과 조건에서 반복되는 수재, 각종 비리와 부정, 대형사건 사고들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 역사는 영광보다 오욕이 더 많았다. 따라서 이를 거듭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기본 상식이요 본능이다. 지난날의 경험을 국가와 국민의 공동기억으로 충실히 저장했다가 유사한 상황이 닥쳤을 때 즉각 작동, 실수 재발을 막는 영구적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국제관계에서 약소국의 비애나 되씹게 하는 사례가 그 동안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동물 중에서 까치는 지능지수가 높은 축에 속한다. 까치들이 과일 등 농작물에 엄청난 피해를 끼쳐 농가에서 여러 가지 퇴치 수단을 동원하지만 한번 겪으면 절대 두 번 속지 않을 정도로 학습효과가 높아 농민들의 속을 썩인다. 반면 붕어나 잉어, 그리고 일부 바다물고기들은 지능도 낮은데다 기억 지속 시간이 3초밖에 되지 않아 조금 전에 혼나고도 금방 되돌아와 같은 낚시의 미끼를 탐내다가 끝내 희생을 당한다고 한다. 이쯤 되면 '학습 불감증'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지금 살인적인 무한 경쟁시대를 살고 있다. 조금만 한눈을 팔았다가는 대열에서 무자비하게 탈락되는 판이다. 그런데 국가와 사회의 기억력이 이 정도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남들이 뒤에서 물고기 같다고 비웃으며 우리를 겨냥한 낚싯줄을 여기저기서 드리우고 있는 것 같아 부끄럽고 걱정스럽다.



- 웹진 '인재제일' 9,10월호 (20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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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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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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