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9월 27일 No. 515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 딴 글 보기 | 손님 칼럼 | 의견함 | 구독신청/해지 | columnist.org |
무욕의 삶엔 향기가 난다

말 타면 종 부리고 싶다는 속담처럼 돈과 권력과 명예는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모두 누리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장상(張裳) 장대환(張大煥) 두 총리서리가 언론과 국회의 검증 절차를 통과하지 못하고 낙마한 것도 대학총장과 언론사대표로서 명예를 누리면서 많은 재산을 형성한 배경이 걸림돌로 작용했다. 총리 수행능력 보다는 재산형성과정이 여론의 뭇매를 맞은 것은 고위공직자에게 높은 도덕률을 요구한 대중심리가 큰 영향을 미쳤다. 성직자나 독신자 중에서 총리를 물색해야한다는 우스개가 나올 정도로 흠 없는 사람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는 것은 우리사회가 물질만능주의로 흐르고 도덕성이 희박해졌기 때문이다.

총리서리의 검증 과정을 통해 드러난 엄격한 도덕적 잣대는 고위공직자는 물론 국회의원 등 선출직에도 확대돼야 하겠지만 나라의 통치자에게는 더욱 엄격하게 적용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3월 이회창(李會昌)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호화빌라' 파문으로 홍역을 치르더니 이번엔 퇴임을 다섯 달 남짓 남겨 놓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퇴임 후 머물 사저(私邸)를 둘러싸고 '호화주택' 논란이 불거져 위화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통령 후보의 빌라 3개 층이 각각 100평을 넘어 서민들의 분노를 샀고, '가족타운'을 이뤄 산다는 것 자체가 납득하기 어려워 한 때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끝내 이사를 했다.

완공을 앞 둔 DJ의 사저는 연면적 199평에 방 8개, 화장실이 7개이며 엘리베이터와 실내 정원이 설치된다고 한다. 엘리베이터는 DJ의 불편한 몸을 감안한 것이라 해도 실내 정원은 가정집에선 드문 시설이다. 건축비용도 8억원 정도라지만 30억원을 넘길 호화판이라는 게 한나라당의 주장이다.

청와대는 보도자료를 통해 "사저에 방(8개)과 욕실(7개)이 많은 것은 대통령 부부를 보좌할 직원들 때문"이며 "실내정원(Sunken Garden)은 채광창(採光窓)으로 지하층을 밝게 하는 용도의 1.5평 소형시설로 나무 한 그루 정도만 심을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파문은 쉽게 가라않지 않고 있다.

5년 전 이맘때 YS(김영삼)의 상도동 사저 신축에 심한 조소를 섞어 비난했던 쪽이 DJ의 야당이다. 대통령이 퇴임 후 살 집을 손보고 새로 짓는 것은 경호상 이유까지 곁들여져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임기 말이면 빠지지 않고 정쟁거리가 됐고 국민의 위화감과 의혹을 키웠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연희동 사저는 5공비리 조사대상이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퇴임 후 고향으로 돌아가 땅콩 농사를 지으며 '사랑의 집 짓기운동(해비타드)'에 앞장서고 있다. 그는 망치를 들고 우리나라에도 몇 차례 다녀갔다. 대통령이나 주지사로 있을 때보다 해비타트 활동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의 실정을 더 많이 알았다면서 처음에는 희생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제는 스스로의 인생에서 가장 큰 축복이었다고 술회한다. 해비타트 운동은 망치로 벽을 허물고 새로 짓는 공동체의 상징이자 '행동하는 선'이다.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대통령은 원주민 부족의 왕족으로 태어나 차별 받고 소외된 흑인들을 위해 투쟁하다 44세에 투옥돼 종신형을 받았다. 27년간 옥고를 치르고 70을 넘겨 감옥에서 나왔으며 1994년 민주선거에서 승리, 300여년의 백인통치를 무너뜨렸다. 자신을 박해한 백인들을 용서와 화해로 보듬어 흑백화합이라는 지난한 과제를 이루어 냈으며 인내와 관용으로 모든 인종을 아우르는 화해의 정치를 실천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연임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고향으로 돌아가 "나를 키워준 계곡과 언덕, 시냇가를 일곱 손자와 함께 거닐며 편안하게 쉬고 싶다"는 고별사(告別辭)대로 말년을 유유자적 보내고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의 퇴임 후 무욕(無慾)의 생활은 더욱 돋보이고 아름다워 향기가 묻어난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빠져나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성경 구절은 불교의 '무소유' 정신과 일맥상통한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처럼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이 무소유의 역리'다.

사람들은 무언가 소유하기 위하여 이 땅에 태어난 듯, 끝없는 소유욕을 채우기 위해 바둥거리며 산다. 그러나 우리는 빈손으로 이 땅에 왔고 결국은 빈손으로 돌아간다. 소유욕의 끝은 따지고 보면 허망할 뿐이다. 소유욕은 우리의 눈을 멀게 하고 욕망은 알게 모르게 죄의 너울을 쓰게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무소유는 아무것도 갖지 말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크고 많은 것보다 작은 것과 적은 곳에서 행복과 가치를 찾자는 것이다. 욕망을 비울수록 마음은 넉넉해진다.

-담배인삼신문 9월27일(2002.09.27)

-----
이규섭

http://columnist.org/kyoos
Florist Meister Schule 기획이사
시인 ·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http://columnist.org
[칼럼니스트]를 이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