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9월 13일 No. 508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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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의 고개 이야기·6> 천등산 박달재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물항라 저고리가 궂은 비에 젖는구려/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구비마다/울었소 소리쳤소 이 가슴이 터지도록.//부엉이 우는 산골 나를 두고 가는 님아/돌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 가소/도토리묵을 싸서 허리춤에 달아 주며/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 반야월이 지은 '울고 넘는 박달재'의 노랫말이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늦은 봄 어느 날. 가수 겸 작사가로 이름을 떨치던 진방남(예명 반야월)씨가 '남대문 악극단'을 이끌고 충주에서 공연을 마친 뒤 제천으로 향하고 있었다. 울퉁불퉁한 비포장 자갈길을 뒤뚱거리며 오르던 버스가 박달재에서 펑크를 내고 주저앉아버렸다.

부슬부슬 내리는 봄 비속에 심란한 마음을 달래며 산책을 하던 진씨는 젊은 남녀가 성황당 앞에서 부둥켜안고 이별하는 모습을 보았다. 갓 시집온 새색시를 두고 서울로 돈벌이 떠나는 신랑의 기약 없는 이별일까. 분명 부부인 듯 싶지만 사연을 물어볼 수도 없는 진씨는 서울로 돌아와 그 모습을 노랫말로 옮겼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그 여인의 이름을 금봉이로 한 것은 평소 좋아하던 춘원 이광수의 소설 '여자의 일생'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을 딴 것이다.

고갯마루엔 박달도령-금봉낭자 동상

그렇게 탄생한 '울고 넘는 박달재'는 작곡가 김교성씨가 곡을 붙이고 1947년 박재홍씨가 취입하여 공전의 히트를 쳤고, 지금도 널리 애창되는 국민가요가 됐다.

'울고 넘는 박달재'에는 박달도령과 금봉낭자의 애절한 사랑이야기가 전설로 전해져 온다. 조선조 중엽 경상도의 젊은 선비 박달은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던 도중 제천시 백운면 평동리에 이르렀다. 해가 저물어 어느 농가를 찾아가 하룻밤 묵었고 그 집 딸 금봉이와 눈이 맞아 백년가약을 약속하고 한양으로 떠났다. 한양에서 자나깨나 금봉이 생각뿐인 박달은 과거시험에 낙방했고, 박달재 서낭당에 올라가 장원급제를 빌던 금봉은 상사병으로 죽었다. 낙방거사가 되어 돌아오던 박달은 금봉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박달재 고갯마루에서 금봉이의 환영을 쫓아가다 낭떨어지로 떨어져 죽었다는 애닮은 사연이다.

고갯마루에 오르면 옛 성황당이 있던 오른쪽 산등성이에 박달이와 금봉이의 동상이 중원평야를 굽어보고 있고, '울고넘는 박달재' 노래비와 박달재 표지석이 길손을 맞고 있다.

박달재에는 유난히 슬픈 사연들이 많다. 신라가 망한 뒤 비운의 경순왕이 고려 왕건에게 나라를 넘기기 위해 피눈물을 뿌리며 박달재를 넘었고,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어린 단종도 영월로 유배될 때 눈물을 삼키며 이 고개를 넘었다. 신해교난(1791년 정조15년)에서 병오박해(1846년 헌종12년)에 이르기까지 천주교도들이 박해를 피해 제천시 봉양면 구학리 베론성지를 찾아가기 위해 이 고개를 넘기도 했다. 고려 때 용장 김취려 장군은 진을 치고 거란의 10만대군을 물리친 곳도 박달재다. 민족사의 영욕이 함께 서린 곳이다.

박달재 터널 개통 후 관광객 발길만

박달재는 태백산맥에서 갈라져 나온 소백산맥과 차령산맥의 겨드랑이쯤에 위치해 있다. '박달령' 도는 '박달현' '박달치'로 부르기도 했지만 노래의 인기와 함께 '천등산 박달재'로 유명세를 얻으며 관광지로 각광 받고 있다. 박달재를 찾아가는 길도 요즘은 많이 변했다. 몇 년전까지는 중부고속도로 일죽 IC에서 38번 국도를 타고 장호원­목계를 거쳐갔다. 중원군 산척면 천등산의 다락재를 넘어 제천시 백운면 평동에서 봉양읍 연박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박달재다.

그러나 중앙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서제천 나들목에서 빠져나와 박달재 터널을 지나면 곧바로 박달재 오르는 길목이다. 잣나무, 전나무, 향나무, 육송 등이 어우러진 울창한 숲 사이로 고갯길이 협곡을 끼고 가파르게 이어져 있다. 그러나 박달재 터널 개통(1차, 1996년 12월, 2차 2000년 12월)이후 박달재는 관광객을 실은 차량만이 오갈 뿐 일반 차량의 통행은 뜸해졌다.

고개에 오르면 박달재 양쪽에 자리잡은 휴게소에서는 '울고 넘는 박달재'의 구성진 가락이 쉼 없이 흘러나와 관광객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정성스레 싸서 낭군의 허리춤에 넣어 주었다는 도토리묵을 먹으며 귀에 익은 노래를 듣노라면 왠지 기분이 울적해진다.

- -광업진흥 9월호 (20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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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http://columnist.org/kyoos
Florist Meister Schule 기획이사
시인 ·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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