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9월 6일 No. 506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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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삶은 아름답다

가진 자들의 욕망은 끝이 없다. 서민들은 먹는 것 입을 것 아껴가며 바둥거려도 내 집 마련하기가 어려운 판에 가진 자들은 아파트를 취미 우표 수집하듯 사재기를 했다.

국세청이 발표한 돈 많은 사람들의 부동산 투기실태는 충격적이다. 소득이 한푼 없다는 주부가 어떻게 아파트를 26채나 거머쥘 수 있었다는 것인가. 직업이 없다는 50대 남자는 아파트와 분양권 12채를 사들여 전매했다. 직업이 변호사와 의사인 부부는 1999년 이후 강남과 수도권 재건축 아파트만 10채를 집중적으로 사들였으면서도 4년간 소득이라고 신고한 금액은 3,300만원에 불과했다.

국민기초생활법의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소득이라니 개도 웃을 노릇이다. 불가사리처럼 탐욕스럽게 아파트를 삼킨 투기행태는 사회적 공분(公憤)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이 많다는 것을 비난하거나 탓할 일은 아니다. 다만 부의 축적 과정이 떳떳하지못한 것이 문제다. 고소득층의 무절제한 탐욕엔 비리나 탈세혐의가 늘 꼬리표처럼 따라 붙는다.

아파트 값이 오를대로 오른 뒤에야 세무조사를 한다고 요란을 떠는 국세청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국세 및 행정 전산망을 활용하면 일정수준 이상의 투기적 아파트 구입자들의 현황과 신상 파악이 언제든 가능한 것이 아닌가. 쥐꼬리만한 봉급에 비해 엄청난 액수의 세금을 꼬박 꼬박 내는 월급쟁이가 연말 정산 때 세금 몇 푼 덜 내려고 편법을 썼다고 다그치던 국세청이 고액소득자들의 탈세에 대해서는 변죽만 울리거나 뒷북만 치고 있다. 불공평 세정에 대한 서민들의 원망은 이제 실망의 단계를 넘어 체념상태로 악화되고 있는 현실을 심각하게 받아드려야 한다.

옛날에는 비록 가난했지만 마음은 풍요로웠다. 특별한 음식이 있으면 이웃과 나눠먹고, 애경사가 있으면 함께 슬퍼하거나 기뻐했다. 돈 많은 사람들이 재산 증식을 위해 게걸스럽게 아파트 투기를 하는 가운데 최근 팔순의 실향민 강태원(康泰元)옹이 평생 모은 270억원어치의 재산을 불우 이웃을 위해 써달라고 기증한 미담은 가진 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가슴 뭉클한 감동이다. 지난해에도 1백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버림받은 사람들을 수용하는 충북 음성군 꽃동네에 아무도 모르게 기부했다고 한다. 부(富)에 대한 바람직스러운 인식과 아름다운 나눔의 정신도 함께 내놓은 셈이다.

해방 직후 혈혈단신 월남한 그는 막노동판에서 쉰 떡을 사먹어가며 돈을 모았다. 어렵게 모은 재산일수록 집착이 강한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강씨는 그토록 어렵게 모은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대신 불우 이웃을 위해 내놓았다. "돈 있는 사람들이 앞장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해야 하며, 그래야 우리 사회가 산다"는 강씨의 지적은 빈부격차가 사회 통합의 최대 장애물로 대두된 세상에 던지는 강력한 메시지다.

다행히 최근 들어 기부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수천억원대의 개인 재산을 내 장학재단을 만드는 기업인들이 속출하고, 작지만 봉급의 일부를 꼬박꼬박 떼 내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샐러리맨들도 늘고 있다. 연말연시에 불우이웃이나 이재민(罹災民)을 돕는 식의 일회성 방식이 아니어서 더욱 고무적이다.

전경련이 작년 3월부터 추진 중인 '1% 클럽'운동의 경우 119개 기업이 가입해 있다. 이 운동의 취지는 회사가 거둔 경상이익의 1% 이상을 사회공헌 활동에 기부하자는 취지다. 풀뿌리 시민을 겨냥한 민간 기부재단도 활성화되고 있다. '유산 1% 남기기 운동'을 비롯해 '아름다운 1% 나눔 운동'을 벌이고 있는 재단법인 '아름다운 재단'의 경우, 매달 참여하는 고정 회원만 2,500여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기부문화는 선진국과 비교하면 아직은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기부 문화가 일상화·제도화되지 못한 데다 부유층의 사재(私財) 출연이나 헌납도 단발성 행사로 끝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돈은 벌기 보다 쓰기가 어렵다고 한다. 무엇보다 '가진 사람'들이 불우이웃과 더불어 살려는 따뜻한 마음을 가질 때 기부문화는 활성화 될 것이다. '마음에 물욕이 없으면 이는 곧 가을 하늘과 맑게 갠 바다와 같다(心無物慾 卽是秋空濟海)는 경구처럼 이 가을 나눔의 삶을 생각하고 실천한다면 세상은 꽃보다 아름다울 것이다.

- 담배인삼신문 2002.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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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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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rist Meister Schule 기획이사
시인 ·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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