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8월 28일 No. 501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 딴 글 보기 | 손님 칼럼 | 의견함 | 구독신청/해지 | columnist.org |

8월 28일 [그해오늘은] '70년대의 노래'



한국의 70년대는 1970년 오늘(8월28일) 시작된다.

"70년대는 '아침이슬'로 시작됐다"는 어느 음악평론가의 말을 따르자면 그렇다.

김민기가 짓고 양희은이 부른 '아침이슬'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70년대가 시작됐다니 과장을 넘어 억지같기도 하다.

미대 회화과에 재학중이던 김민기는 그림보다 노래를 기웃거리다 낙제를 해 당시 1학년이었다.

양희은은 재수끝에 입학해 1학년이었다.

교동초등학교 동기인 이들이 하향평준화해 얼치기 작곡가와 풋내기 가수같은 모습으로 다시 만난 것이다.

실은 "긴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이라는 노랫말도 당시의 시대상황보다 자신들의 고달픈 현실에 걸맞았다.

하지만 바로 그런 노래가 운동권 노래로 불리운 것은 너무 70년대적이다.

국민은 '태양은 묘지 위에'의 '묘지'를 독재의 탄압으로 보았고 이를 말릴 수는 없었다.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를 '혁명선동'으로만 보는 당국을 말릴 수도 없었다.

국민과 정부가 이처럼 엉뚱하게 '아침이슬'을 합창하는 동안 이 노래는 운동권의 성가로 자리잡았다.

그 끝에 김민기는 78년 '공장의 불빛'이라는 노래극으로 진짜 운동권 음악가가 됐고 그것도 70년대적이다.

그것은 김민기에게 아쉬움이다. '아침이슬'이 '혁명가요'가 되는 바람에 '한국 가요의 혁명'을 선도했다는 생색이 바랜 것이다.

구태의연한 대중가요나 서양풍의 팝송이 주류를 이루던 시절 김민기는 한국적 음율을 고운 우리말로 불렀던 것이다.



- 세계일보 2002.08.28

-----
양 평 (梁平)
http://columnist.org/yangpy

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칼럼니스트]를 이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columnist.org

c o l u m n i s t @ c o l u m n i s t . o r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