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8월 28일 No. 500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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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정보화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휴대폰은 생활필수품의 차원을 넘어 신체의 일부나 다름없는, 아주 긴요한 도구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젊은 층은 웬만한 일을 휴대폰으로 처리할 정도로 휴대폰의 역할은 매우 크다.  

휴대폰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많다. 통화는 당연한 것이고 기상정보, 주식시세, 오늘의 운세 등 온갖 정보를 검색할 수 있다.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게임을 하기도 한다. 이제는 인터넷은 물론 주식거래까지 할 수 있게 됐으니 휴대폰이 우리의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힘은 날로 커져만 가고 있다.

젊은이들을 가만히 보면 틈만 나면 휴대폰으로 누군가와 끊임없이 대화를 한다. 이들은 남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오지 않으면 내가 먼저 전화를 건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많은 젊은이들이 휴대폰으로 별 중요하지도 않은 내용을 끊임없이 주고받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목소리뿐만 아니라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젊은이들도 많다. 휴대폰을 연신 손가락으로 누르는 모습을 보면 저렇게 진지할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갖게 된다. 메시지를 보낼 때 엄지를 많이 쓴다고 해서 엄지족 또는 엄지세대라는 말도 생겨났다.

젊은이들에게는 아마도 휴대폰으로 통화하는 것 자체가 내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만약 이들에게 휴대폰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면 입과 귀를 막는 것 이상으로 답답해 할 것이다. 휴대폰이야말로 통화의 기능을 넘어서 인간감각의 매개체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3가지 요소는 의·식·주이다. 여기에 한가지만 더 보태라고 한다면 필자는 서슴없이 통신을 선택하겠다. 지금 이 시대에서의 통신이야말로 입고 먹고 자는 일 못지 않게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전화중독증에 걸린 사람이 있을 지경이니 일상생활에서 통신의 비중이 얼마나 큰 것인지 짐작이 간다.

우리 몸의 일부나 마찬가지가 돼버린 휴대폰을 만약 집에 두고 나온다면 그야말로 난감해진다. 하루 일과 자체가 불편할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제 휴대폰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세상이 돼버렸다. 마치 담배를 심하게 피우는 사람이 담배가 없으면 안절부절해 지는 것처럼 일종의 금단증세마저 일으키게 된다.

휴대폰을 갖고 다니면서도 충전상태 부족한 것을 나타나면 혹시 중요한 통화를 할 수 없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 요즘 사람들의 심정이다. 휴대폰을 갖고 있어도 걱정이고 없으면 더욱 걱정이니 휴대폰은 어느새 우리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요물이 됐다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이렇듯 현대인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것이 휴대폰이지만 "휴대폰 없이 조용히 살겠다"고 선언한 사람들이 있다. 남태평양의 호주령 노퍽섬 사람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호주 시드니에서 북동쪽을 1천6백㎞ 떨어진 이 섬의 주민 2천명은 지난 22일 주민투표를 실시해 휴대폰을 이용하지 않기도 결정했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호주 정부가 수백만 달러 규모의 이동통신망 설치 제의를 받아들일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주민투표를 실시했는데 찬성 3백56표, 반대 6백7표로 휴대폰을 이용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 섬에 설치된 2천4백여대의 유선전화와 바다 밑으로 깔려 있는 광케이블을 통해 연결된 인터넷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주민들의 생각이라고 한다.  

이로써 노퍽섬이야말로 「휴대폰 청정지역」이 된 셈이다. 이 섬에는 텔레비전이 1980년대에야 들어왔을 만큼 주민들은 현대문명과는 거리들 두어왔다. 섬 주민들은 첨단 테크놀로지에 의해 시간을 쪼개서 살아가는 생활보다는 현대문명의 이기에 구애받지 않는 삶을 선호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 섬의 주민 30% 가량이 1789년 영국 군함 바운티호에서 반란을 일으켰던 선원들의 후손이다. 나머지 주민들은 남태평양 고도의 목가적이고 전원적인 자연환경과 생활에 반해 섬으로 들어온 호주본토인들과 뉴질랜드인 등이다. 처음부터 외부에 알려지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모여 작은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우리 주변에도 가끔 휴대폰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초등학생에서부터 8순 노인들까지 갖고 있는 휴대폰을 외면하는 것을 보면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휴대폰이 없으니 얼마나 자유로운지 모른다고 말한다. 속박을 받지 않아서 좋다는 것이다.

정보화시대에 휴대폰이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필요 있든 없든 간에 지금의 세상을 살아가려면 휴대폰으로 서로 연락할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이런 탓에 휴대폰 사용하지 않는 본인은 자유로울지 모르지만 주변사람들은 불편해진다. 무슨 급한 일이 있어도 연락하기가 쉽지 않아 답답할 수밖에 없다. 자신은 편하지만 남에게는 불편한 것이다.

만약 1주일만 휴대폰 없이 살아본다면 어떻게 될까 궁금해진다. 우선 나 자신이 불편할 것이고 다음으로 주위사람들이 불편할 것이다. 휴대폰 없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남태평양의 섬나라 노퍽사람들이 정말 부럽다.

- 2002.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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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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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월간 인터넷라이프 편집인.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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