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8월 23일 No. 497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 딴 글 보기 | 손님 칼럼 | 의견함 | 구독신청/해지 | columnist.org |
무단침입인가, 표현의 자유인가

포털사이트는 물론 관공서나 기업의 홈페이지에는 방문자를 위한 게시판이 있다. 게시판은 방문자들이 자신의 생각을 글로 올려놓는 일종의 마당역할을 한다. 기업에서는 게시판을 통해 고객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으며, 관공서에서는 일반시민들의 민원이나 건의사항을 받아들여 정책이나 행정에 반영시키고 있다.

이처럼 홈페이지에 마련된 게시판이야말로 어느 누구든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네티즌이라면 언제라도 방문하여 자신의 의견을 소신껏 개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홈페이지이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특정 회사 홈페이지에 일방적으로 e메일을 보낼 경우 무단침입인가, 표현의 자유인가를 놓고 송사가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지난 14일자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인 인텔에서 7년전에 해직된 엔지니어 출신 켄 하미디(55)라는 사람이 회사를 비난하는 메일을 홈페이지 계속 올리자 최근 그에 대해 '회사재산 무단침입 혐의'로 고소를 했다는 것이다.  

"사이버 공간도 명백한 사유재산이며, 원하지 않는 사람으로부터 침해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 인텔측의 주장이다. 문제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재산 무단침입'은 지금까지 거의 적용된 적이 없는 법조문이라는 점에서 이 사건은 많은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인텔측이 하미디를 고소할 법 조항을 검토하다가 사이버 공간도 재산권을 갖는다는 점에 착안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 사건을 맡고 있는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은 이 달 말에 하미디의 e메일이 재산에 대한 무단침입인지, 아니면 표현의 자유에 속하는 문제인지에 대해 판단을 내릴 예정이라고 한다. 이 사건은 재판 결과에 따라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사전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보낸 e메일은 물론 표현의 자유만 믿고 무차별적으로 전송한 인터넷 메일광고(스팸메일)까지 처벌받을 수 있는 중요한 법적 판단이 마련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텔측의 이 같은 처사에 대해 하미디의 반발도 매우 거세다. 그는 "e메일은 과거 할 말이 있어도 방법을 찾지 못해 말을 하지 못했던 많은 이들에게 복음과도 같은 존재"라면서 "이를 제한한다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며, 이는 명백한 위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e메일 전송은 어디까지나 '표현의 자유'에 속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하미디의 주장대로 요즘 같이 인터넷상에서의 e메일을 주고받는 일이 일상생활화된 상황에서 상대방이 원치 않는 e-메일을 띄웠다고 해서 이를 '무단침입'으로 처벌한다면 무수한 범법자가 양산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남의 홈페이지에 메일을 보낼 때 일일이 승락을 받아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빚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 생각 없이 글을 올렸다가 범법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사건과 관련해서 미국 스팸방지재단측은 인텔측의 편에 서 있는 듯하다. "이번 소송은 해고자와의 분쟁이라는 차원을 넘는 것으로, 재판 결과 인텔사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마땅한 규제수단이 없어 방치돼온 메일 광고를 규제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될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내심 인텔사측이 승소할 것을 바라는 눈치이다.

그 동안 미국 정부는 포르노나 사기광고 등을 보내지 않는 한 인터넷 메일을 보내는 행위 그 자체에 대해서는 법적 규제를 하지 않아 왔다. 한편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최근 미국 최대 팩스광고회사인 팩스닷컴사가 수신자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보낸 광고팩스 4백89건에 대해 벌금 최고액인 5백40만달러를 부과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스팸메일이 기승을 부리면서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자 수신거부의사에도 불구하고 보내는 스팸메일에 대해서는 비교적 엄한 제재를 가하고 있다. 지난 달에는 정보통신부가 수신거부 의사에도 불구하고 스팸메일 재전송한 6개 업체를 적발,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각각 400만∼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기도 했다.

미국이나 한국의 정부당국이 이처럼 스팸메일에 대해 엄격한 규제를 하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업적 행위에 대한 것이지 개인의 e메일에 대한 것은 아니다.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텔사와 하미디간의 송사는 그런 점에서 상업적인 스팸메일과는 시각을 달리해야 한다.

소비자 또는 민원인을 위한 홈페이지를 만들어 놓고는 자신들에게 이롭지 않은 메일에 대해서는 무단침입 등의 죄를 씌워 처벌하려는 것은 네티즌의 입장으로 봐서는 말도 안 되는 처사라고 하겠다. 손님이 찾아오도록 해놓고는 경우에 따라 범법행위로 몰아세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온라인에서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가게 문을 열어놓고 고객을 맞이하다가도 마음에 들지 않는 손님에 대해서는 무단침입이라고 주장한다면 그야 말로 개가 웃을 일이다. 정말로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면 어느 손님이 마음놓고 남의 회사를 방문하거나 남의 상점에서 쇼핑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인텔측에서 전직 사원이 올린 비난메일이 비록 언짢긴 해도 그것을 두고 무단침입 운운한다는 것은 지나친 처사임에는 틀림없다. 방문객이 홈페이지에 비난하는 글을 올리는 것이 두렵다면 그런 홈페이지는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하겠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는 문을 열어놓고는 출입자를 선별해서 적법, 불법을 따지는 기업이 있다면 그 기업은 인터넷시대에서는 아무 필요 없는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공개된 홈페이지에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고 해서 무단침입으로 본다면 그것은 인터넷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비록 미국에서의 일이지만 이번 사건의 재판이 무단침입으로 결론이 나는 불상사는 없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만약 무단침입으로 판결이 난다면 표현의 자유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하고 있는 사이버공간은 그야말로 암담한 세상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2002.08.23

--------------
이재일
http://columnist.org/netporter/
칼럼니스트
월간 인터넷라이프 편집인.편집국장
-----

http://columnist.org
c o l u m n i s t @ c o l u m n i s t . o r g

[칼럼니스트]를 이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를 평가해 주십시오.   [[평가]]
아래 광고는 메일 서비스 회사 인포메일에서 하는 것입니다.
:::The way to mailmagazine - infomail publ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