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8월 3일 No. 486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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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서적

지난 6월 초순 부도 이후 출판계가 모든 힘을 쏟아 회생을 모색했던 종로서적이 결국 되살아나지 못하고 7월 중순 임종을 고했다. 향년 95세.

뭐 하나 진득하게 보존하지 못하는 우리 풍토에서 100년 가까운 수명은 장수임이 틀림없지만, 가업이나 무형문화재, 조상의 숨결이 살아있는 공간, 건물 등을 수백 년 대대로 간직하고 이어오는 것이 예사인 선진국에 비하면 너무 짧은 삶이라 안타깝기 그지없다. 종로서적은 단순한 한 개의 책방이 아니라 종로시대를 이끌어온 역사의 주역이었던 터라 아쉬움이 더욱 크다.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한 뒤 600년 동안 종로는 서울의 얼굴이었고, 종로의 중심지는 2가 일대 즉 종로 네거리 부근이었다. 종로의 옛 이름 운종가(雲從街)는 '구름 따라 흐르는 거리' 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 조선시대 서울 사람들이 아침이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가 저녁이면 일제히 흩어진다고 해서 이런 낭만적인 이름이 붙은 것이다. 지금은 서울의 도심이 많이 분산돼 과거와는 사뭇 다르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가 흩어지는 것은 마찬가지고 서울의 중심지 구실도 여전하다.

일제시대에는 영창, 박문, 광창, 세창 등 크고 이름난 책방들이 출판문화를 주도했고 1970년대까지 종로서적 부근은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이들의 거리였고 지식인들의 숨결이 넘실대던 곳이었다. 종로서적은 이곳에서 한 평생 기쁨과 영광보다는 오욕이 더 많았던 격동기의 역사를 지켜보면서 문화의 견인차 구실을 했다. 신문로에서 종로3가까지 들어선 중앙도서전시관, 한국 출판판매, 양우당, 범한서적, 동화서적, 삼일서점, 서울서적, 청구서림, 숭문사 등 쟁쟁한 서점들을 좌우로 거느리며 종로서적은 '문화의 종로시대'를 구가했다.

그러나 1980년대 초반 교보문고를 시작으로 영풍문고, 을지서적 등 초대형 서점이 부근에 들어서면서 변화가 왔다. 그 많던 서점들이 이 통에 문을 닫거나 다른 곳에 둥지를 튼 것이다. 그 와중에도 단지 종로서적만이 퇴락한 종갓집의 늙은 대감처럼 새로운 바람을 달갑지 않다는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달랐다. 예전에는 종로서적의 비좁고 구불구불한 통로와 몇 개 층을 오르내려야 하는 낡은 계단 등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지만, 널찍하면서도 동선 연계를 다각도로 고려한 다른 대형서점들을 상대하면서 얼마나 불편한 것인지 새삼 느끼며 차츰 떠나갔다. 필요한 책을 찾는 것도 상대적으로 더딜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종로서적은 이에 대해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최후를 맞이했다. 서울사람들에게 낯익고 정겹던 또 하나 삶의 반려자가 변화와 경쟁의 강풍에 견디지 못하고 이렇게 우리 곁을 떠나간 것이다.


- 웹진 '인재제일' 7,8월호 (2002.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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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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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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