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8월 1일 No. 484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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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시대 자료 보관의 고민

최근 스웨덴 서쪽 해안 지방을 자동차로 여행하면서 타눔이란 곳의 선사시대 암각화 군집지역에 가 보았다. 울산시 언양읍의 반구대 암각화보다는 훨씬 소박한 선(線)으로 배와 사람 형상들이 여러 바위들에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현장에서 매우 의아스러운 정경을 보았다. 박물관 직원이 암각화 새김선에 붓으로 붉은 칠을 새로 하고 있는 것이었다. 유네스코에 등록된 세계인류문화유산을 훼손하는 일이 아닌가. 알아보니 이유가 있었다. 관람 편의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림의 흔적을 잃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미 어떤 것은 붉은 칠이 벗겨지면 새긴 자국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오염된 대기 속의 화학물질 때문에 날로 바위의 마멸이 촉진되고 있다고 한다.

바위에 새기는 것은 오래도록 남기기 위한 것이기는 하나, 많은 정보를 다 바위에 새길 수는 없다. 종이가 발명된 뒤에는 정보들이 거의 모두 종이에 적혀 보존돼 왔다. 바위에 새겨도 지워지는데 하물며 종이에 적거나 그린 것의 수명이야 말할 나위도 없다. 1966년 불국사 석가탑 해체 때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종이 두루마리는 제작연대가 750년경인,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물이다. 이 정도면 종이의 수명도 꽤 길기는 하지만, 화약약품으로 표백처리하는 신식 종이는 산화가 빨라 내구성이 형편없다. 1945년에 나온 서울신문 창간호는 손만 대도 부슬부슬 떨어질 정도여서 사진으로 찍어 두고 실물은 금고 속에 보관하고 있다.

종이 인쇄물의 신통치 않은 내구성 때문에 고민해 온 도서관이나 문서보관소들은 디지털 문서로 변환함으로써 해결의 길을 찾으려 했다. 그런데, 플로피 디스켓이나 하드 디스크 또는 테이프 등 자기(磁氣) 저장매체의 수명은 기껏해야 10년쯤인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는 디지털화한 방대한 자료들을 10년마다 새 디스크에 옮긴다. 광디스크에 옮기면 읽을 때 마찰이 없어 훨씬 오래 쓸 수 있다. 이 역시 플라스틱과 알루미늄이라는 재질이 지닌 수명을 벗어나지 못한다.

문제는 또 있다. 디지털 자료들을 읽으려면 자료 제작 당시의 프로그램도 함께 보관해야 한다. 같은 프로그램이라도 버전이 다르면 옛 버전의 자료를 읽지 못하는 수가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컴퓨터도 당시의 것을 보관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디지털 문서는 종이 문서와는 달리 일부가 훼손돼도 문서를 볼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인터넷시대가 되자 자료 보관에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인터넷에 떠도는 무수한 자료들을 그대로 놓아두고 말 것인가, 어디에 집중적으로 따로 모아 보관할 것인가다. 유용한 사이트를 북마크해 두었다가 나중에 찾아가 보면 없어진 경우가 많다. 사이트를 운영하는 기관이 없어질 수도 있고 개인 개설자가 마음 바꾸거나 생을 마칠 수도 있다. 사이트는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 복사본 없는 원본이 소멸되는 것이다. 인류 문화유산의 손실이다. 도서관이 신간 서적 나올 때마다 챙겨서 보관하듯이, 인터넷으로 발행된 지식의 산물을 어딘가에서 모으고 있어야 이치에 맞는다. 그래서 스웨덴 왕립도서관 같은 몇몇 나라의 기관에서는 인터넷 자료들을 모은다.

자료 보관은 석기시대나 인터넷시대나 쉽지 않은 과제다. 돌에 새기거나 종이에 적거나 디지털로 바꾸거나 해도 영원히는 보존될 수 없다. 그런데다가 시대가 지날수록 정보량은 폭발적으로 는다. 자료를 기록하고 저장하고 검색하는 일 자체는 편해졌다 하더라도, 작업 대상이 엄청나게 많아지고 보관 문제가 시대를 넘어 여전히 고민거리다.


- 대한매일 '인터넷스코프' 2002.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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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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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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