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7월 29일 No. 483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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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안된 여행의 행운

가르치는 일과 배우는 일을 겹치기로 하는 내게 방학 직전은 지옥과 같았다. 학기말의 부산함 뒤끝에 허둥지둥 떠난 이번 7월 중순의 스칸디나비아 여행은 '준비된 여행'이 되지 못했다. 호텔과 렌트카 예약도 하지 않고 가서 부닥치니 여기저기서 일이 어긋났다. 게다가 모처럼 인터넷의 그물에서 벗어나 보자고 컴퓨터를 가지고 가지 않았는데, 가서 보니 이 또한 실책이었다.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는 세계에서 디지털 환경이 윗줄에 있는 나라들이다. 거기 가서 현장을 점검했어야 옳은 일이다. 이 나라들 호텔은 객실에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인터넷 연결 단자가 한결같이 전화기 옆구리에 장치돼 있는 것이 특이했다. 이것으로 보아 초고속 랜은 아니고 전화선을 통한 접속인 것이 분명했다. 접속 상태와 전송 속도가 궁금했지만 시험할 수 없어 유감스러웠다. 컴퓨터가 있으면 다음 갈 곳의 정보를 알아보기도 쉬운데....

공공도서관에 가면 무료로 인터넷을 쓸 수 있으나 대개 사람들이 줄서 있다고 한다. 여행객 처지로는 도서관 들러 보기도 쉽지 않다. 오슬로 중앙역에서 반갑게도 이층에 있는 인터넷 라운지를 발견했다. 컴퓨터가 여나믄 대 놓여 있고 붐비지 않았다. 내게 온 이메일을 대충대충 열어 보았는데 한글을 읽을 수 있었다. 물론 보내는 것은 한글로 하지 못한다. 30분 쓰는 데에 우리 돈으로 6천원쯤 했다.

7박 가운데 세 밤을 시골 캠프장에서 싼 비용으로 잤다. 노르웨이서는 두 번 캠핑했다. 트빈데(Tvinde) 캠프장은 같은 이름의 유명한 폭포 앞에 있었다. 쌍둥이 폭포인데 그래서 tvinde인 듯하다. 노르웨이말로 '둘'은 tvo다. 그 다음 들른 우트네(Utne) 캠프장의 그림 같은 캐빈에는 세탁기가 있어 모처럼 빨래도 했다. 창밖으로는 밀이 익어가는 남부 노르웨이의 들판이 훤히 내려다 보였다. 스웨덴에서는 타눔(Tanum) 지방에서 잤는데 바로 캠프장 길 건너가 선사시대 암각화 유적지여서 유네스코에 등록된 세계적 문화재를 관람할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 인터넷으로 세 캠프장과 주변 지역을 더 상세하게 알아보았다. 지나는 길에 우연히 머물렀는데도 좋은 곳들이 용케 걸렸음을 확인했다.

정작 여행 전이나 여행 중에는 인터넷을 요긴하게 이용하지 못하고 여행 다녀온 뒤에야 이용하니 어리석다 아니할 수 없다. 준비되지 않은 여행은 고생스러웠으나 뜻밖의 행운도 있었다.


- 벼룩시장 '즐거운 인터넷 여행' 2002.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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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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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전 대한매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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