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7월 25일 No. 480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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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현상(假面現象)

흔히들 자기 집만큼 편한 곳이 없다고 한다. 또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푹 쉬고 싶어 한다. 사람들은 그런 곳에서 무장을 해제한다. 갈수록 복잡해지고 힘들어 가는 나날의 생활을 헤치고 나가기 위해 장착한 장비와 도구들을 모두 벗어버리고 홀가분한 시간을 즐기는 것이다.

언어학 관계자들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를 만나 말을 주고받는 순간부터 알게 모르게 경쟁과 대립의식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가벼운 인사말을 건네고 응답하지만 심리적으로는 이미 깊은 곳에서 상대방에 대한 경계심과 긴장감이 작동한다. 인간은 원래부터 경쟁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표정도 여기에 맞춰 달라진다. 자기 혼자 있을 때와 직장 등 밖에서 활동할 때의 얼굴이 달라지는 것이다. 즉 밖에 나갈 때는 자기 본래의 표정을 감추기 위한 가면을 쓰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이런 것들을 다 벗어붙이고 자신의 진짜 모습으로 돌아오니 얼마나 편하겠는가.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혼자인 순간에도 그런 장비들을 내려놓지 않고 자기 자신까지도 속이려 든다. 그러면서 언제 그런 가면이 벗겨져 들통이 날까 걱정한다. 사기꾼들이 여기에 속한다.

반면 사회를 위해 여러 가지 면에서 활동하고 존경을 받으면서도 가면이 벗겨질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 능력과 참모습은 그게 아닌데 과도한 대우를 받는다는 생각에 늘 시달리는 것이다. 이를 가면 현상(imposter phenomenon)이라고 한다. imposter는 '사기꾼', '타인을 사칭하는 자'를 뜻하는 것으로 회사의 중역이나 의사, 변호사 등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지위와 신분에 이르렀으면서도 끊임없이 '이것은 나의 참모습이 아니다', '언제 가면이 벗겨질지 모른다' 등의 망상에 시달리는 현상이다. 미국에서 성공한 사람의 70% 정도가 이와 같은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자신을 늘 돌아보면서 반성하는 '선량한 사기꾼들'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떤가. 지방선거에 이어 대통령선거까지 올 한해가 선거로 이어지면서 무수한 인물들이 매스컴을 장식하고 있다. 훌륭한 인재들이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헌신하겠다는 것은 얼마든지 좋은 일이다. 그들도 미국의 성공한 사람들처럼 자신을 늘 돌아볼까 아니면 가족은 물론 자신까지 속이려 드는 뻔뻔한 사람들일까. 그것이 궁금하다.


- 웹진 '인재제일' 7,8월호 (200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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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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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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