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7월 24일 No. 479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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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4일 [그해오늘은] 부민관 원폭



1944년 오늘 부민관(현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아세아 민족 분격(憤激)대회'는 진짜 분격대회로 끝나고 말았다.

물론 그것은 중국 만주 조선인들이 '성전'을 위해 마지막 힘을 다하도록 분격시키려는 취지와는 다른 분격이었다.

대회장에서 폭탄이 터진 바람에 일본 경찰과 친일파들만 분격시키고 만 것이다.

친일파들의 분격은 경찰의 그것을 넘었다.

하필이면 이 대회를 주관한 친일파 박춘금(朴春琴)이 연설할 때 폭탄이 터져서 더 그랬는지 모른다.

박춘금은 그 범인인 조문기(趙文紀.현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등에 5만원의 현상금을 걸었다.

오늘날로 치면 50억원을 현상금으로 내놨으나 놀랄 일은 아니다. '일제하의 이완용'인 박춘금의 존재를 알면 그렇다.

그는 깡패로 입신해 일본에서 중의원에 두번이나 당선됐으나 의외로 그 '명성'이 높지 않다.

이 중의원 의원은 한국에 오면 더 무서운 주먹꾼으로 되돌아갔다.

동아일보 사주 김성수나 사장 송진우를 폭행하고도 무사했으니 두 가지 '주먹'을 갖춘 셈이었다.

그런 박춘금이 거금을 내걸었으나 범인은 잡지 못했다. 사건후 한달도 못돼 일제가 패해서였다.어찌 보면 부민관 사건은 히로시마보다 열흘 앞서 서울에서 원폭이 터진 셈이었다.

황국의 몰락에 박춘금이 얼마나 분격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현상금을 축내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광복후 치안대가 결성되자 그가 치안대장 장권(張權) 등에게 보낸 20만원에는 아마 그 돈도 들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장권이 "이 돈은 받을 수 없다"고 함으로써 그는 또 돈을 축내지 않았다.


- 세계일보 2002.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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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평 (梁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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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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