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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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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4일 [그해오늘은]
부민관 원폭
물론 그것은 중국 만주 조선인들이 '성전'을 위해 마지막 힘을 다하도록 분격시키려는 취지와는 다른
분격이었다. 대회장에서 폭탄이 터진 바람에 일본 경찰과 친일파들만 분격시키고 만 것이다.
친일파들의 분격은 경찰의 그것을 넘었다. 하필이면 이 대회를 주관한 친일파 박춘금(朴春琴)이 연설할 때
폭탄이 터져서 더 그랬는지 모른다. 박춘금은 그 범인인 조문기(趙文紀.현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등에
5만원의 현상금을 걸었다. 오늘날로 치면 50억원을 현상금으로 내놨으나 놀랄 일은 아니다. '일제하의 이완용'인
박춘금의 존재를 알면 그렇다. 그는 깡패로 입신해 일본에서 중의원에 두번이나 당선됐으나 의외로 그 '명성'이
높지 않다. 이 중의원 의원은 한국에 오면 더 무서운 주먹꾼으로 되돌아갔다. 동아일보 사주 김성수나
사장 송진우를 폭행하고도 무사했으니 두 가지 '주먹'을 갖춘 셈이었다. 그런 박춘금이 거금을 내걸었으나 범인은
잡지 못했다. 사건후 한달도 못돼 일제가 패해서였다.어찌 보면 부민관 사건은 히로시마보다 열흘 앞서 서울에서 원폭이
터진 셈이었다. 황국의 몰락에 박춘금이 얼마나 분격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현상금을 축내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광복후 치안대가 결성되자 그가 치안대장 장권(張權) 등에게 보낸 20만원에는 아마 그 돈도 들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장권이 "이 돈은 받을 수 없다"고 함으로써 그는 또 돈을 축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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