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7월 22일 No. 477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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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 코리아

인도양 과 남중국해를 연결하는 길목에 위치한 싱가포르는 1개의 큰 섬 과 50여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 어진 해상 도시국가다. 국토는 640㎢로 서울 보다 조금 크지만 세계 비즈니스 천국으로 각광받고 있다. 1965년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한 싱가포르는 동남아라는 배후시장을 밑천으로, 이를 외국기업에게 팔아 국부(國富)를 창출해왔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우리나라보다 5,000달러가 더 많다.

우리는 곧잘 싱가포르를 '범생이(모법생)'다운 모범국가로써 각종 제도와 모범사례를 비유하곤 한다. 가장 대표적인 모델이 부정부패가 없는 깨끗한 정부와 환경분야다. 싱가포르의 깨끗한 것 세 가지를 들라면 깨끗한 정부, 깨끗한 거리와 깨끗한 물이다.

깨끗한 정부가 이룩한 성공신화에는 청렴한 공무원들이 큰 몫을 하고있다. 싱가포르 공무원은 최고의 엘리트 집단으로 외국 기업을 효과적으로 유치하는 마케팅의 정예 전사들이다. 학점이 우수한 대학생들을 미리 골라 공무원으로 발탁하고, 해외 경영대학원(MBA) 과정을 밟게 한다. 급여는 싱가포르 최고 수준을 보장하며, 외국기업을 유치할 때마다 성과급을 준다. 개인별 담당 업무와 연락처는 인터넷에 상세히 소개하고, 이들이 내미는 명함에는 컬러사진까지 박혀 있다.

외국기업이 투자 문의를 해오면 주거 환경과 문화·레저 정보까지 제공하고, 활약이 돋보이는 외국기업들은 담당 공무원 재량으로 세금 등 각종 인센티브를 부여한다. 금융감독당국의 검사도 시스템과 리스크 관리가 핵심이다. 꼬투리를 잡기 위한 후진국의 검사관행과는 확연히 다르다. 급행료 등 부정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공무원들의 이권 개입 등 부정부패가 만연한 우리의 실정과 비교할 때 싱가포르의 깨끗한 정부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또한 싱가포르는 급속한 성장을 이뤄 곳곳에 들어선 고층빌딩에도 불구하고, 녹음 우거진 깨끗한 도시환경을 조성하여 세계 6대 관광국 중 한 곳이 됐다.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사람보다 관광객 수가 더 많다는 재미있는 나라다. 관광 자원을 위해 건축을 허가할 때도 설계가 기존의 건물과 달리 특색이 있어야 한다.

차량이 즐비하게 거리를 누비고 있지만 교통 체증이 없다. 도로 곳곳에 설치한 무인 카메라가 법규위반 차량을 적발하기 때문에 거리엔 교통경찰이 눈에 띄지 않는다. 교통경찰과 전신주가 없고 약국이 없는 것이 싱가포르의 3무(無)다. 전신주가 없는 것은 도시계획이 잘된 탓이고, 약국이 없는 것은 한약이나 한의학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도시가 깨끗한 것은 시민의식도 성숙하지만 규제가 심한 것이 주효했다. 공공장소나 정부기관 사무실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 없다. 필자 같은 골초는 무척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듯이 짧은 여정이지만 지킬 수밖에.

횡단보도로부터 50m이내의 장소에서 무단 횡단할 경우 50S$(스리랑카 달러)의 벌금이 부과된다. 우리나라 돈으로 3만5,000원 꼴이다. 공중화장실에서 용변 후 물을 내리지 않는 것도 불법이며 첫 번째 적발시 150S$의 벌금이 부과되며, 두 번 째부터는 1,000S$1의 벌금이 부과된다. 우리나라도 공공장소에서 침을 뱉고 쓰레기를 버리는 것은 불법이지만 싱가포르에서는 첫 적발 땐 1,000S$, 두 번째 적발되면 2,000S$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미관을 해치는 모든 행위는 법규로 규제하고 있다. 서울의 경우 영세간판업체가 4,000여개가 난립해 있는 반면, 싱가포르는 4개정도의 전문회사가 디자인을 맡고 하청업체들이 간판을 제작하고 있다. 인위적이고 규제가 심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우리의 환경현실을 감안하면 깨끗한 거리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 월드컵 성공을 기념하고 서민생활 애로를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교통벌점 특별 감면조치를 단행했다. 선심성 사면조치는 법 정신의 훼손뿐 아니라 질서의식을 경시하는 풍조를 조장할 수 있다. 법을 지키는 사람만 손해라는 불신풍조가 우려된다.

그래도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 미국 뉴욕타임지는 한국의 월드컵을 평가하면서 폭력, 무례, 쓰레기가 없는 3무(無)를 보여줬다고 격찬했다. 응원이 끝난 뒤 쓰레기를 치운 성숙한 시민의식은 '클린 코리아'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 담배인삼신문 2002.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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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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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rist Meister Schule 기획이사
시인 ·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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