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7월 10일 No. 471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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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고을에 가면 더위가 씻긴다

옛날 자기 그림자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그림자에서 벗어나려 안감힘 쓰며 달아났다. 그림자는 그 사람이 빨리 뛰면 빨리 쫓아오고 천천히 뛰면 천천히 쫓아오며 따라붙었다. 숨을 돌리려 나무 그늘아래 머물자 그림자는 사라져버렸다. 중국의 사상가 장자(壯子)가 쓴 우화다.

'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 식영정(息影亭) 툇마루에 앉아 광주호 푸른 물을 바라보노라면 쫓기듯 살아온 일상을 잠시 접고 여백의 쉼표를 찍을 수 있다. 전라남도 담양(潭陽)군 남면에 위치한 식영정은 광주호를 발끝에 거느리고 성산(星山)을 마주한 언덕배기에 고매한 선비처럼 가부좌를 틀고 있다.

손때묻은 식영정 툇마루에 앉아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면 눈길이 시원해지고 청솔 숲을 거쳐온 솔바람 소리에 귀가 맑아진다. 이마에 송글송글 맺히는 땀방울도 금새 잦아들어 한여름 무더위가 말끔히 씻긴다.

광주호로 흘러드는 증암천을 예전에는 자미탄(紫薇灘)이라 불렀다. '자미'는 우리말로 배롱나무. 흔히 목백일홍이라 부른다. '탄'은 여울이니 자미탄 둑을 따라 목백일홍이 무리지어 피어났을 옛 풍경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식영정 입구에는 '송강 정철 가사의 터'라는 돌비석이 세워져 있어 가사문학의 요람임을 알려준다. 돌계단을 오르면 노송아래 정철이 지은 '성산별곡(星山別曲)'을 새긴 카다란 대리석이 버티고 있다. 유홍준 교수는 이를 두고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식영정 정원을 추물로 만든 '날벼락'이라고 꼬집었다.

식영정은 정면 두 칸 측면 두 칸의 팔작 지붕에 한 칸 짜리 서재와 넓은 툇마루로 구성돼 있다. 1560년(명종 15년) 서하당(棲霞堂) 김성원(金成遠)이 그 의 스승이자 장인인 석천 임억령((林億齡)을 이곳에 머물러 쉬도록 지은 것이다. 식영정의 명성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송강 정철이 지은 '성산별곡'의 무대이기 때문이다.

16세기 조선조 사대부들의 전형적인 자연관이 여실하게 드러나 있는 성산별곡은 자연은 군자의 벗일 뿐 삶을 아우르는 대상은 아니었다. 따라서 식영정은 삶의 터전이 아니라 잠시 쉬었다가 훌쩍 떠나는 휴식처에 불과하다.

맞은 편 언덕으로 발길을 돌리면 환벽당(環碧堂)이 식영정과 마주 보고 있다. 환벽당은 송강이 과거에 급제하기 전 10여년간 공부하던 곳으로 낚시대를 드리우고 세월을 낚았다는 조대(釣臺)가 낙랑장소 아래 있다. 환벽당 부근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덕령의 후손인 김만식이 장군의 덕을 기리며 지은 취가정(醉歌亭)이 둥지를 틀고 있다. 취가정 마루에 앉으면 꽃 꺾어 수놓으며 술을 마셨다는 송강의 취흥풍류가 떠오른다.

식영정에서 화순방향으로 2㎞ 거리에 떨어져 있는 소쇄원(瀟灑園) 비롯, 이 일대는 조선시대 원림문화(苑林文化)의 중심지다. 소쇄원은 자연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 탁월한 건축공간으로 한국 정원의 특색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소쇄원 들머리의 울창한 대숲도 한 여름의 짜증을 댓바람에 실어보낼 수 있다.

식영정 부근에 건립한 '가사문학관'에 들르면 옛 문화를 음미해보는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다. 사미인곡, 성산별곡, 면앙정가의 가사가 적힌 병풍을 보며 가사문학의 진수를 느낄 수 있고, 식영정 산수화와 소쇄원 48경을 담은 그림을 통해 훼손되지 않은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가사문학을 꽃 피운 송강의 친필을 비롯, 면앙정 송순, 석천 임억령 등 조선 중기 선비들의 유품과도 만난다. 그러나 5,000여평의 부지에 지상 2층 연건평 541평의 덩치 큰 건물은 은둔을 꿈꾸며 자연과 더불어 살았던 선인들의 뜻과는 걸맞지 않다.

'대나무골' 또는 죽향(竹鄕)으로 불리는 담양은 죽세공예품의 산실이다. 보기만 해도 서늘한 느낌을 주는 대나무 돗자리에 앉아 부채를 부치면 기계로 찬 공기를 뿜어되는 에어컨 바람에 견줄 수 있겠는가. 요즘이야 집집마다 냉장고에 김치냉장고까지 있어 음식과 김치를 보관하고 있지만 예전엔 대나무 소쿠리에 밥을 담아 추녀 끝에 걸어 두어도 쉬지 않았다. 한 여름 대청 마루나 사랑방에서 모시옷을 입고 죽부인을 안고 낮잠을 자는 어른들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시원했다.

담양의 죽세공예품은 우리 민족과 호흡을 같이 해온 생활용품이다. 대나무를 이용하여 대고리짝·죽부인·키·바작·어리·반짓고리 등을 만들어 사용해왔다. 대나무의 쓰임새는 다양하다. 활·화살·창 등 무기는 물론이거니와 퉁소·대금·피리 등 악기재료로 이용했다. 죽순 요리·죽엽 청주는 식도락가의 입맛을 돋우고, 대기름과 죽엽은 약용으로도 쓰인다.

담양의 죽물시장은 300여년의 역사를 지닌 전국 최대 규모였다. 조선시대에는 삿갓이 하루 3만여개씩 팔려나갔고 중국, 몽고, 일본으로 수출까지 했다. 그래서 죽물장터 입구를 '삿갓점머리'라고도 불렀다. 참빗 또한 청나라와 일본 상인까지 불러들일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참빗 거래량이 얼마나 많았던지 일제는 진소(眞梳·참빗)조합을 설립하여 조합비 명목으로 연간 쌀 3,000가마를 뜯어갔다. 죽물산업이 번성한 덕분에 광주와 담양 사이에 철도가 놓이고 일제 때는 개성 다음으로 세금이 많이 걷혔다.

해방이후에는 장남감이나 의자, 베게 같은 새로운 죽세공예품을 만들어 미국, 영국, 일본 등으로 수출하는 등 1970년대 후반까지 최고의 호황을 누렸다. 플라스틱 생활용품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고, 중국의 덤핑 죽세공예품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지난날의 번성함은 찾을 수 없다. 2일과 7일에 열리는 5일장의 경기도 시들해졌고 요즘은 담양천 고수부지에서 열리는 죽물시장마저 썰렁해졌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담양에는 '대나무 인간'들이 많아 죽세공예품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담양에서 죽세공예품을 만드는 집은 줄잡아 240여가구, 1,400여명이 70여종의 대나무공예품을 만들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화려한 죽세공예품은 낙죽(烙竹)과 채상이다. 낙죽은 대의 표면을 인두로 지져 무늬를 그리는 기법으로 낙화(烙畵), 또는 낙각(烙刻)이라고도 한다. 도안은 십장생도를 비롯하여 산수·국화·송학·매화·포도·탑 등 다양하다

숯불에 달군 인두가 뜨거우면 곧추세우고, 식으면 뉘어서 온도의 농담(濃淡)을 조절한다. 인두가 식기전에 연속된 무늬를 완성시켜야 하는 숙련된 기술이 필요한 작업이다. 놀라운 것은 인두의 온도에 따라 검정색, 다갈색, 밤색 등 다양한 색깔이 나타난다. 열이 높으면 검정색, 낮으면 다갈색이 된다.

이러한 기술을 가진자를 낙죽장(烙竹匠)이라하여 중요무형문화재 제31호로 지정했다. 그 첫 번째 기능보유자는 이동련(李同連)씨 었으나 1987년부터는 국양문(鞠良文)씨가 명맥을 이었다. 국씨는 4살 때부터 삼촌 판동씨에게 참빗 만드는 기술을 배워 시장에 내놓을 정도로 뛰어난 낙죽장이었다. 국씨는 1998년 12월 84세로 타계했다.

채상이란 대나무를 얇고 가늘게 쪼개 빨강, 노랑, 파랑 색으로 염색한 뒤 짜서 만든 대나무 상자다. 혼수감이나 반짓그릇, 임금이 승하할 때 봉물을 담아보내는 데 사용했다. 정다산은 '목민심서'에서 정성들여 만든 채상의 무늬와 촉감은 마치 비단을 바른 듯 곱다고 표현하였다. 현란한 색깔과 화려한 문양을 위한 염색과 마무리 작업이 무척 까다롭다고 한다. 무형문화재 제53호인 서한규씨가 맥을 잇고 있다.

죽물은 만들기는 어렵지만 수요가 예전만 못하다. 그런 까닿에 담양의 죽세공예품도 꾸준히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 내고 있다. 이미 현대인의 기호를 반영한 죽물이 전통 죽물을 앞서고 있다. 소쿠리·키·참빗 등이 사양길로 접어든 반면, 대나무 돗자리·대나무 방석·전화 받침대·자동차 시트 등 새로운 제품들이 쏟아져 나온다.

죽물 시장이 제구실을 못하게 되면서 상설 죽세공예단지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담양군은 1998년 3월부터 죽세공예진흥단지를 조성하여 운영하고 있다. 단지 내에는 죽물박물관이 있어 죽세공예품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죽물박물관에는 세계 각국의 죽세공예품 1,500여점이 전시돼 있다.

- 산재의료관리원 (2002.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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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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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rist Meister Schule 기획이사
시인 ·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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