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7월 6일 No. 470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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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브랜드 ID와 이름

    "너의 이름을 '久(구)'로 하노니, 이름을 돌아보고 뜻을 생각하여 감히 방종한 행동을 하지 말라. 놀기 좋아하지 말고, 날마다 이치를 궁구하고 착한 일을 행하며, 조심하여 쉬지 않고 노력하면 인격과 교양이 구비된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날로 퇴보하여 소인이 될 것이니, 너의 이름이 함유한 뜻을 공경하고 이를 실현하고저 노력하라" 조선 태종 때 좌의정 河崙(하륜)의 '名子說(명자설)' 일부분이다. 아들 이름을 '구'라 지었으니 평생 이름의 의미를 잊지 말고 노력해 훌륭한 인물이 되라는 당부였다. 전통사회에서 이름이 갖는 의미와 그 중요성을 잘 드러낸 사례라 하겠다.

    이처럼 과거에는 이름이 지닌 뜻을 돌아보며 수양에 힘쓰도록 했으며 그 소중한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멸시로 여겨 극력 피했다. 顧名思義(고명사의. 이름을 돌아보고 뜻을 생각함) 敬名思想(경명사상. 이름을 존경하는 사상) 實名敬避(실명경피. 상대의 본명을 입에 올리는 것은 실례이므로 피함)등의 관습에 따른 것이다. 길 가던 나그네가 하루 밤 묵으려 어느 집에 들어가면 먼저 입에 올려서 안 되는 글자가 무엇인지 묻는 것이 필수였다. 자기도 모르게 그 집사람들의 이름을 불러 발생할 화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한 것이었다.

    대신 號(호)나 字(자)를 사용했다. 그 중에서도 호의 사용을 더욱 권장해 이는 누구든지 자유롭게 부를 수 있었다. 예전 사람들이 대부분 호를 가졌던 이유가 여기 있다. 지금도 어른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은 습속이 남아 있고, 아기가 태어나면 좋은 이름을 짓기 위해 작명소를 찾아가는 등 예전 못지 않게 신경을 쓰지만 호나 자를 필수적으로 짓는 관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반면 이제는 남이 자기 이름을 자주 불러주지 않을까 걱정하는 세상이 되었다. 남에게 불리지 않고 잊혀진 이름이 되는 것은 바로 인생의 낙오와 실패를 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디지털시대로 접어들면서 각 개인의 ID(identification number)가 과거의 호나 자보다 더욱 필수적이고 위력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ID는 컴퓨터를 사용할 때 사용자를 식별하기 위한 기호라고 사전은 엄격하게 풀이하고 있지만 느슨하게 보면 개인의 신원이나 신분을 대신하는 표시라 할 수 있다. 인터넷이 지금처럼 보편화되기 전에는 주민등록번호가 대표적 ID였으며 군번 학번 은행계좌번호 운전면허증 등도 이름 대신 개인을 식별해주는 역을 해냈다. 뒤늦게 등장한 휴대전화 번호는 앞의 것들보다 훨씬 강력한 ID역을 하고 있다.

    하지만 본격적인 디지털사회로 접어들면서 온라인 상의 ID가 그 어느 것보다도 강력하고 위력적인 역할을 맡게 되었다. ID가 없으면 대부분 감당할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과 명함을 주고받았을 때 넷맹이 아닌데도 이메일과 홈페이지 주소, 휴대전화 번호가 기재되어 있지 않으면 약간의 거리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상대가 자신에게 그 이상 접근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의도를 암시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반면 넷맹이어서 그런 것이 기재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그에 대한 접근성이 그만큼 제한돼 현대의 은자를 만난 듯하다.

    이처럼 ID는 사회전반의 세태와 풍속도를 급속히 바꾸어 가고 있다. 기업과 제품의 브랜드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지만 차츰 개인 브랜드화하는 추세다. 즉 ID가 갖는 신용도나 파워에 따라 개인의 재산, 이미지가 막대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또 개인정보가 폭넓게 들어있으므로 철저한 관리가 따르지 않으면 엄청난 피해를 보게 된다. 주민등록번호나 미국 등 다른 나라의 사회보장번호는 국가기관이 관리하므로 개인이 이를 관리하고 보호하려면 일정한 주의만 기울이면 되지만 ID는 아직까지는 대부분 개인이 관리하고 보호해야 한다. 이 때문에 그에 따른 부작용과 역효과가 끊임없이 발생, 종전과는 다른 사회문제가 잇따르고 있다.

    현실 사회 즉 오프라인 상에서는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국가 또는 공공기관 차원의 여러 가지 보호책과 안전장치가 있다. 그러나 온라인 상에서는 아직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 시간 적 공간적으로 제한을 받는 오프라인보다 이를 뛰어넘어선 온라인 상의 인간활동은 급격히 증가, 그에 따른 생명과 재산의 보호가 더욱 절실하고 긴박한 실정이다. 하지만 그 대책은 '나는 놈' 아래 '기는 놈' 수준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기자가 지난해 실시한 ID훔치기 실험은 이 점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그 기자는 '인터넷의 위험성'이라는 기사를 쓰기 위해 동료들의 ID가 얼마나 쉽게 도난당할 수 있는가를 실험했다. 먼저 동료의 컴퓨터에 침투하기 위해 VNC(Virtual Network Computing)라는 무료 소프트웨어를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사용했다. 프로그램 압축을 풀고 동료의 컴퓨터에 재빨리 설치했다. 그러자 자기 컴퓨터 화면에서 동료의 온라인상의 모든 활동을 볼 수 있었다. 동료가 인터넷에서 어디를 방문하는지 알 수 있었고 그가 이메일을 읽고 답장 쓰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순간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ID 절도는 생각처럼 어렵지 않다. 지난해 미국에서 50만개의 ID가 도난당했다. 과거보다 ID 절도를 훨씬 쉽게 해주는 웹 사이트들이 있다. 예를 들어 많은 웹 사이트들이 위조 운전면허증을 판다. 이때 구매자는 다른 사람의 사회보장번호만 있으면 된다."

    이처럼 누군가가 자신의 인터넷 상 행적을 계속 추적할 수 있다. 그 사람이 당신의 인터넷 뱅킹 이용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가 ID와 비밀번호를 알아서 당신 돈을 마음대로 빼낼 수도 있다. 얼마나 소름끼치는 일인가.

    이름보다 ID 사용이 효율적으로 광범위하게 여러 가지 편리함을 제공하지만 그 뒤에는 이처럼 위험하고 허술한 면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온라인 상에서 하는 일을 잠겨진 문 뒤에서 혼자서 하는 일로 생각하지 말고 열린 창문 가까이에 있는 것으로 여겨야 한다. 즉 누군가가 계속 지켜보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 기자는 그건 특정 개인일 수도 있고 국내외의 폭력조직일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아니겠지 하고 생각하기 쉽지만 신용카드나 은행 계정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든지 그들의 목표가 된다.

    미국은 인터넷의 개인비밀보호 규범은 현재 법정과 연방 의회, 주 입법부에서 만들고 있는 중이다. 그렇지만 더 많은 보호장치를 마련하라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우리는 이에 비해 매우 취약한 편이다. 국가와 사회 차원의 더욱 강력한 보호제도와 안전 장치가 시급하고 절실하다. 이에 앞서 시민 각자의 주의와 관심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자신들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 정부의 그만큼 귀를 덜 기울이기 때문이다.


- '안동병원보' 여름호 (20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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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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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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