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7월 4일 No. 468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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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도 일이다

   마땅히 쉴 곳도 놀이문화도 다양하지 못하던 어린 시절, 천렵(川獵)은 여름철 가장 즐거운 놀이 중에 하나였다. 어른들은 삼복더위를 피해 농사일을 하루쯤 접고 술추렴을 해 냇가로 나갔다. 맑은 냇물에서 물고기를 잡아 얼큰한 매운탕을 즉석에서 끓여먹는 맛은 일품이다. 아이들은 반두나 어레미를 들고 으슥한 구석이나 풀 섶을 잽싸게 훑어낸다. 금새 모래무지, 피라미, 붕어 몇 마리가 걸린다. 물고기를 잡다가 지치면 개헤엄을 치기도 하고 입술이 파랗게 질리면 냇가에 앉아 해바라기를 한다.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던' 시절의 여가는 풍요롭지 못했지만 마음은 넉넉했다.
   주 5일 근무제 도입에 대한 논의가 뜨거운 가운데 은행권이 7월부터 근무시간을 단축하기로 합의함으로써 본격적인 주 5일 근무시대의 서막이 올랐다. 서비스가 본령인 금융권에서는 주 5일 근무제를 실시해도 자동화기기나 인터넷 뱅킹을 사용하면 별 문제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고령층이나 지방의 경우 자동화기기에 덜 익숙한 데다 자동화기기는 과거 각종 고장과 사고가 빈발했던 점에 비추어 은행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수출 등 기업활동의 차질도 걱정거리다.
   근로시간을 줄이고 근로자의 여가를 늘려 생활의 질을 향상시키겠다는 주 5일 근무제 취지는 옳다. 더구나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중 주 6일 근무제를 실시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라는 데 근무여건을 '국제수준' 에 맞추는 것은 국제화 시대의 당연한 논리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노동계는 임금 보전을 전제로 근로시간 단축을 요구하고 있다. 재계는 주 5일 근무제를 도입하려면 주 6일 근로를 전제로 한 현행 휴일-휴가제도의 과잉보호 규정들을 마땅히 국제기준에 맞춰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주 5일 근무제가 실시되면 한해 노는 날이 153∼175일로 거의 하루걸러 노는 꼴이 된다. 선진국들에 비해 공휴일이 5∼9일 많고, 월차휴가, 경조사 휴가, 여성의 생리휴가 등이 더해져 총 140일 안팎인 선진국 휴일 수 보다 10∼20일이 많아지는 것이다.
   주 5일 근무제가 전면적으로 시행되면 여가문화의 활성화 등 일상생활에 일파만파의 변화가 예상된다. 휴일이 늘어나면서 문화, 관광, 레저산업 관련 소비가 늘어나 경제성장의 새로운 동인이 될 수 있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일요일 하루 여가 때는 집에서 TV를 시청하거나 수면을 취하면서 그야말로 혼자 푹 쉬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주 5일 근무제가 확산되면 가족 단위의 문화 나들이가 늘어 날 것이다. 지식과 체험이 어우러진 복합적이고 깊이 있는 여행상품이 인기를 끌 것이고, 문화 패키지로는 가족 모두가 참여하는 전통문화 탐구, 조류·생태계 관찰 등의 복합·체험형 프로그램이 활성화 될 것이다.
   그러나 여가시간이 갑자기 늘어나면 소득 수준이나 문화 시설의 차이에 따라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기회의 격차가 더욱 두드러지게 된다. 대도시 주민, 여유층, 정규 근로자 등은 여가문화를 즐길 수 있는 반면 그 반대 층은 소외감이 더욱 심해질 것이다.
   사업장도 마찬가지다. 금융기관에 비해 수익성이 낮은 제조업 분야의 중소기업들은 인건비 부담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가뜩이나 서비스업종에 인력을 빼앗기고 있는 중소기업들은 인력난 심화와 함께 생산성 저하가 우려된다. 금융업을 겸하고 있는 농협의 경우도 파견 근로자 등을 포함해 30% 정도가 주 5일 근무제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될 형편이라고 한다.
   365일 연중 가동해야 하는 장치산업의 경우 현재 일반화돼 있는 3조 3교대 근무에서 4조 3교대로 공장을 운영해야 하므로 인건비 부담의 증가는 피할 수 없다. 또한 노사정위원회에서 잠정합의된 월차휴가가 폐지되면 1년 미만의 비정규직 근로자의 불이익도 불을 보듯 뻔하다.
   주 5일 근무제로 생활의 중심이 가정과 여가로 바뀌면서 근무분위기가 이완돼 생산성이나 품질의 저하도 우려된다. 주 5일 근무제가 성공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근로시간 단축을 법제화하여 부문간 근로조건이 지나치게 크게 벌어지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늘어난 휴일은 산업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물론 가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가뜩이나 가계빚이 늘어 위험수위에 달하고 신용카드 불량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사회 부작용이 심각한 요즘 여가활동 비용도 만만찮게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휴식도 일의 연장이다. 적당한 휴식은 에너지를 재충전하여 근무에 활력소가 된다. 그러나 천렵을 하던 시절도 아니고 아직은 여가문화가 성숙되지 못한 현실에서 일자리가 불안하고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쉬어야 할지 또 다른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 농협중앙회 '두레' 7월호 (20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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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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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rist Meister Schule 기획이사
시인 ·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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