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7월 1일 No. 466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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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사판 시대

     등사판이라는 것을 요즘 젊은이들은 아마 본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 파라핀을 먹인 얇은 종이를 등사 원지라 한다. 이것을 까끌까끌한 철판 위에 놓고 철필로 긁어 글자들을 쓴 다음, 틀에다 붙이고 잉크 묻힌 롤러로 눌러 밀면 그 밑의 종이에 인쇄된다. 개인용 컴퓨터와 복사기가 보급되기 전인 80년대초까지 등사판 인쇄는 싼 비용으로 문서를 다량 복제하는 데 요긴하게 쓰이었다. 이 등사판을 독재 정부는 두려워했다. 그것으로 정부 비판 지하 간행물이 만들어지고 있어서였다. 비밀 작업장을 찾아내, 사람들을 체포하고 등사판을 압수했다.
     그런데 오늘날과 같은 초고속정보시대에도 등사판을 정부가 허가해야 쓸 수 있는 나라가 있다. 바로 쿠바가 그렇다고 한다. 등사판이 그러하니 컴퓨터와 복사기 판매가 엄하게 규제되고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 나라에서도 인터넷이 이용되기는 한다. 인터넷은 정부가 철저히 관리하는데 한 달 이용료가 280 달러나 된다. 노동자가 한 해 동안 받는 임금이 평균 260 달러라니까 일반 국민이 이용하지는 못한다. 이메일로 조심스럽게 외부 세계와 접촉하는 이용자들은 검열이 다소 어려운 웹 기반 메일을 쓰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래도, 쿠바의 국가 도메인 이름 .cu가 붙은 웹사이트를 찾아보면 꽤 많이 나온다. 국가가 관리하니까 포르노 사이트가 발을 붙이지 못한다는 장점은 있다.
     그런데, 자국 도메인 이름이 붙은 웹사이트가 하나도 없는 나라가 있다. 쿠바보다도 몇 곱절 깜깜한 곳이다. 등사판을 두려워하는 정부, 컴퓨터와 인터넷을 두려워하는 정부, 정보의 자유로운 소통을 두려워하는 정부가 있는 한 그 나라는 발전할 가망이 없다. 국민을 어둠 속에 가두어 놓은 채, 잠시라면 몰라도 길게는, 다른 나라와 경쟁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벼룩시장 '즐거운 인터넷 여행' 2002.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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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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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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