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6월 15일 No. 457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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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5일 [그해오늘은] 어리석은 왕은 축복



폭군이나 암군이라고 나쁜 것만은 아니다. 로마의 전성기가 네로 시대라는 말도 있다.

1215년 마그나 카르타를 탄생시킨 잉글랜드의 존 왕도 그렇다.

근대적 헌법의 원형으로 민주주의의 상징 같은 이 '대헌장'은 존이 어리석지 않았으면 탄생할 수 없었다.

1167년 헨리 2세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리석기 전에 불우한 편이다.

프랑스에 있던 국토가 3명의 형들에게 분배된 바람에 '무지왕'(無地王.Lackland)으로 불린 것이 그렇다.

그러나 1199년 형 리처드 1세가 죽자 조카 아서를 죽이고 왕위를 빼앗은 것은 수양대군을 떠올리게 한다. 그 바람에 프랑스의 필립 2세와 전쟁을 벌인 것도 불운이었다.

그는 세조와 달리 별 능력이 없는 데 비해 필립 2세는 '존엄왕'으로 불리었다.

전쟁에 진 그는 대륙의 영토를 많이 잃었으나 몇년 뒤에는 다시 로마 교황과 맞붙다 파문처분을 당한다.

가까스로 파문 처분은 면했으나 그는 국토를 전부 교황에게 헌상하고 자신은 봉건적 신하로 자처하는 등 굴욕을 감수했다.

감탄스러운 것은 꺾일 줄 모르는 그의 투혼이었다.

싸움마다 본전을 못찾은 그였으나 1214년에는 다시 필립 2세에게 빼앗긴 프랑스의 영토를 되찾겠다고 한 것이다.

그 투혼은 영토를 되찾지는 못했으나 마그나 카르타를 탄생시켰다. 귀족들이 종군을 거부하며 이의 승인을 강요한 것이다.

귀족들이 시민들을 선동해 관철시킨 마그나 카르타는 귀족의 권리를 확인한 문서였을 뿐이다.

귀족의 동의 없이 세금을 부과할 수 없다는 것도 그렇다.

그러나 역사는 자유의 발전과정이기에 그 대상은 넓혀져 갔다.


- 세계일보 2002.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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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평 (梁平)

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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