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6월 2일 No. 452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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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세탁

   흔히 돈만큼 더러운 것이 없다고 한다. 모든 악의 근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돈에 투영된 인간의 물욕이 그렇게 추악하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그 같은 인간의 때를 벗겨낸 돈 그 자체도 상당히 더럽다. 몇 년 전 미국 오하이오주 라이트 패터슨 공군기지에 근무하는 피터 엔더 박사 팀이 한 고등학교 매점에서 1달러 짜리 지폐 68장을 수거해 조사한 결과 대부분 병원성 미생물로 오염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 5장은 건강한 사람들도 감염될 수 있는 박테리아들로 범벅이 되어 있었으며 59장은 병원에 입원한 환자나 면역체계가 약화된 사람들이 감염되기 쉬운 박테리아들을 지니고 있었다. 나머지 4장만 비교적 깨끗했다.
    그렇게 근엄하고 진지한 연구가 아니라도 사람들은 돈에 각종 균과 박테리아가 잔뜩 붙어 있으리라는 것을 잘 안다. 별의 별 사람의 수많은 손과 온갖 지저분한 곳을 무시로 거치는데 깨끗할 턱이 있겠는가.
    그래서 사용자들의 위생상 진정한 돈 세탁은 필요하다. 평소에 깨끗하게 사용하여 돈의 수명을 연장시키자는 캠페인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서민들의 은행 출입이 오늘날 같지 않던 시절에는 방바닥에 돈을 펼쳐놓고 찢어진 것은 붙이고 꼬깃꼬깃한 것은 다리미로 정성껏 다려서 사용했다. 아무래도 애들 코묻은 돈을 많이 다루는 노점상 행상들이 주로 그랬고 어쩌다 돈 구경을 하는 영세민들도 그렇게 조심스레 소지했다. 그들이야말로 순수하고 훌륭한 돈 세탁사들이었다.
    그러나 요즘 언론을 도배질하는 대통령의 둘째 아들 돈 세탁설은 세탁이라는 낱말의 뜻과는 반대로 추하기 짝이 없다. 악취가 진동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규정한 돈 세탁 또는 자금세탁(money laundering)은 불법적 무기 판매 및 밀수, 조직범죄, 횡령 및 내부거래, 뇌물수수 및 컴퓨터 사기 등 범죄행위를 통해 얻은 수입을 불법적으로 운용해 자금의 원천을 은폐하도록 조작하는 행위를 총칭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기업의 비자금이나 탈세 등을 통해 얻은 이른바 검은 돈을 다른 계좌에 넣었다 뺐다 하는 등의 수법으로 자금 추적을 어렵게 하는 행위도 여기에 포함시키고 있다.
    빈부격차가 갈수록 커져 서민들의 불만과 고통이 날로 늘어가고 있는데 김씨의 거액 세탁설은 그들의 절망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저소득층은 현 정권의 주요 지지기반이었다. 그들은 헐벗고 고생하면서 표를 모아 주었다. 그런 그들에게 대통령의 아들들은 부패한 권력과 돈이 얼마나 추악한 것인가를 재확인시켜주고 있다. 지지에 대한 보답치고는 너무나 고약하지 않을 수 없다.


- 웹진 '인재제일' 5.6월호 (20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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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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