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5월 31일 No. 450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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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없어서는 안될 공중전화

며칠 전 휴대폰을 깜빡 잊고 나오는 바람에 큰 불편을 겪은 적이 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처럼 그날 따라 길가에서 전화를 쓸 일이 많았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늘 갖고 다니던 공중전화카드를 사용했으나 그마저 남은 돈이 적어 오래 쓸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전화카드판매소에서 2천원짜리를 하나 사서 써야 했다. 사실 휴대폰을 갖게 된 이후로는 별 쓸모 없어 보였던 전화카드였는데 이날만은 매우 요긴한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지금은 휴대폰이 모든 통신수단의 맨 윗자리에 앉아있는 시대임을 실감할 수 있다. 언제 어디서나 휴대폰으로 통화가 가능하니 최고의 통신수단임에 틀림없다. 심지어 공중전화박스 옆에서도 휴대폰을 먼저 꺼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집에서도 휴대폰으로 전화를 거는 경우가 많다. 휴대폰에다 자주 통화하는 사람의 전화번호를 단축번호로 입력해 놓은 탓에 그냥 누르면 되니까 나도 모르게 휴대폰으로 통화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이다. 이처럼 휴대폰사용은 너나 할 것 없이 이미 몸에 깊이 베어있는 습관이 돼버렸다고 할 수 있다.  

현대인의 통화습관이 이렇게 휴대폰중심으로 돌아가니까 공중전화가 차츰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이 돼가고 있는 것 같다. 공중전화를 쓰는 사람이 적으니 한국통신(KT)측의 손실도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고 공공서비스의 기능 때문에 공중전화를 없앨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한국통신의 애로가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이다.

한국통신에 따르면 공중전화의 매출이 지난 98년 7천2백억원으로 최고액을 기록했으나 2000년에는 4천억원선으로 크게 떨어졌고, 올해는 2천8백억원에 그칠 전망이다. 손실액도 98년 5백64억원에서 2000년에는 2천억원을 넘어섰다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올해에 1천억원 이상의 적자가 기록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공중전화 보급대수도 계속 줄어들고 있는 형편이다. 지난 99년에 최고 56만대에 이르던 것이 2000년부터 크게 감소하기 시작했는데 이 같은 현상은 1954년 공중전화가 첫선을 보인 이후 처음이었다는 것. 지금은 20만대를 넘는 수준이라고 한다.

공중전화가 휴대폰에 밀리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다. 1926년에 공중전화가 처음 등장한 영국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전역에 걸쳐 15만개에 이르는 공중전화를 지난해 말부터 철거하기 시작했다. 다만 빈민지역이나 농촌지역, 기차역 등 수요가 많은 지역의 공중전화박스는 그대로 두었다고 한다.

공중전화 사용이 줄어들다 보니 한국통신 측이 고장난 공중전화를 재빨리 고치지 않고 방치해두는 경우도 많다. 신문의 독자투고란에 가끔 이런 일을 나무라는 글이 실리기도 한다. 공중전화가 애물단지로 변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한국통신 측의 처사가 잘못된 것임은 틀림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한국통신이 공중전화를 살리기 위한 대책을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공중전화카드(KT전화 선불카드)로 특정 인터넷쇼핑몰에서 물건을 구입하고 결제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좋은 예에 속한다. 이 카드는 일반상품 뿐만 아니라 공중전화나 이동전화 사용료까지 결제할 수 있는 상품권 기능을 갖고 있어 50만∼199만원까지 자유롭게 충전하면서 사용할 수 있다.

「값싸고, 전자파가 없고 끊김이 없습니다.」 한국통신이 최근 공중전화 이용을 호소하기 위해 만든 스티커에 적힌 문구이다. 한국통신은 이 스티커를 20만장 만들어 전국의 공중전화부스에 부착했다고 한다. 「휴대폰 3천만시대」를 맞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공중전화를 살리기 위한 방안이다.

2년 전 지하철 안에서 본 광고문구가 다시 생각난다. 「이번은 공중전화역입니다.」「핸드폰요? 조금만 참으세요! 90초만 기다리면 공중전화가 기다립니다.」「핸드폰 통화, 정말 긴급한 내용입니까? 아주 조금만 참아주세요. 모든 지하철벽엔 공중전화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시에 전동차안의 광고판에 적혀 있던 내용들이다.

한국통신의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중전화 때문에 계속 적자를 본다고 해서 공중전화를 없애서는 안 된다. 휴대폰 사용인구가 3천만명이나 된다고 해서 공중전화가 필요 없어졌다고 말해서도 안 된다. 공중전화야말로 최일선에서 시민들의 입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공중전화가 모두 사라져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어느 날 휴대폰 없이 길을 가다가 꼭 필요한 곳에 전화를 해야 할 상황에 놓이면 어떤 방법으로 통화를 해야할지 걱정스럽다. 직장에서는 친구나 동료들의 휴대폰을 빌려쓰는 것이 최선일 텐데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정보화사회는 언제라도 필요한 때에 남들과의 통신, 특히 전화통화가 가능해야 제대로 굴러갈 수 있는 사회이다. 즉 정보통신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이다. 한국통신의 수익성이나 휴대폰사용인구의 증가와 관계없이 꼭 필요한 장소에 놓여져 있는 공중전화의 필요성은 그래서 더욱 강조된다. 공중전화는 우리들이 급할 때 이용할 수 있는 고마운 존재로 영원히 남아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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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일
칼럼니스트
전 월간 인터넷라이프 편집인.편집국장

2002.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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