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5월 30일 No. 449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 딴 글 보기 | 손님 칼럼 | 의견함 | 구독신청/해지 | columnist.org |
<이규섭의 고개이야기·5> 정선 비행기재

    '강원도 정선/ 사람의 이름으로 가보아야 할 마을/ 도라지꽃 같은 마을'
    박세현 시인은 정선을 '걸어서 가보아야 할 땅/ 죽기전에 가보아야 할 지명/ 신작로를 따라 터벅대며 가보아야 할 국토'라고 '정선가는 길'에서 노래했다.
    정선은 서울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다가 새말에서 빠져나와 찐빵으로 유명한 안흥을 지나 방림-평창-미탄을 거쳐 정선까지 승용차로 네 시간 넘게 걸린다. 평창으로 접어들면서부터 태백산맥의 등뼈가 뻗어 내려 빚어놓은 준령들이 주름치마처럼 펼쳐저 있다. 평창에서도 뱃재, 멧둔재 등 크고 작은 고개를 넘고서야 정선의 관문인 마전치(麻田峙·해발 650m)에 닿을 수 있다.
    이 고개는 마전치라는 옛 이름 보다 '비행기재'로 더 많이 불린다. 산굽이를 돌고 돌아 고개 마루까지 오르는 길이 마치 비행기에 탑승 한 듯 높고 아득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버스를 타고 이 고개를 넘으려면 미리 생명보험에 들어놔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을 정도다.
    여름 장마철이나 겨울에 눈이 쌓이면 길이 막히기 일쑤였으나 1989년 비행기재에 터널이 뚫리면서 도로가 말끔히 포장되어 영서지방과 정선을 오가는 길이 수월해졌다. 그 뒤 고랭지 채소나 임산물 유통이 빨라지면서 정선사람들의 살림살이가 윤택해지기 시작했고 오지였던 정선 주민들의 생활 패턴도 빠르게 변했다.
    비행기재 고개 마루를 지나 정선읍에 이르는 4Km 에움길은 낭떠러지에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는 듯 현기증이 날 정도다. 조양강을 끼고 있는 정선읍이 아득하게 눈 아래 펼쳐져 마치 비행기 창문을 통해 내려다보는 느낌이다.
    '아질아질 성마령아 야속하다 관음베루/ 지옥같은 정선읍내 10년간들 어이가리/ 아질아질 꽃베루 지루하다 성마령/ 지옥같은 이 정선을 그 누구 따라 나 여기 왔나' 조선 중엽 정선 수령(守令)으로 부임해 오던 오홍묵(吳弘默)의 부인이 정선길의 아득함을 한탄하여 불렀다는 노래다. 오직 멀고 아득했으면 지옥 같다고 했을까. 얼마나 산마루가 높았으면 손을 뻗어 별을 딸 수 있다고 '성마령'이라고 불리었을까.
    '택리지(擇里志)'를 쓴 조선시대 인문지리학자 이중환(李重煥)도 정선 땅에 대해'무릇 나흘동안 길을 걸었는 데도 하늘과 해를 볼 수 없었다'고 가파른 산세를 지적했다. 지금은 새 길이 뚫리면서 성마령이나 베루요새로 통하던 옛 길이 사라졌다.
    '사람의 이름으로 가보아야 할 마을' 정선 땅을 밟으면 아라리의 구성진 가락에 서린 고려 충신들의 마음이 떠오른다. 송도의 만수산에 검은 구름이 몰려들면서 고려의 운명은 끝나고 조선왕조가 들어선다. 고려 충신 일곱 명은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개성의 두문동(杜門洞)을 거쳐 정선 땅을 찾아와 은거했다. 정선군 남면 낙동리는 고려의 일곱 충신들이 은거했다하여 '거칠현동(居七賢洞)'이라고도 한다.
    그들은 나라 잃은 슬픔과 삶의 무상함을 한시로 읊었다. 그 가락은 산골을 맴돌았고 사람들은 그 가락을 풀어 나갔다. 한 맺힌 가락이 풀어지면서 민초들은 다시 거기에 저항과 망향, 한탄과 체념, 사랑과 애증을 소리로 담았다. 정선아라리의 가락은 그렇게 민중속에서 싹터왔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백은 낙엽에나 쌓이지/ 잠시 잠깐 님 그리워 나는 못살겠네'
    아우라지강을 사이에 두고 여랑리와 유천리의 처녀 총각이 실어보내는 애틋한 그리움이 소리 마디마디에 묻어난다. 진도아리랑은 흥청거리고 신명나며 기교성이 뛰어난 반면 밀양아리랑은 뚝뚝하고 육중하며 남성적이다. 이에 비해 정선아리랑은 단조롭고 유장하며 애처로워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가락이다.
    정선 사람치고 아라리 한가락 못하는 이가 없다. 놀이의 역할을 하는 노래가 아니라 삶 속에서 한숨처럼 뱉어내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수백 년을 이어온 가락에 정선 사람들은 아직도 새롭게 노랫말을 보태고 있다. 그래서 정선아라리는 옛날 노래이지만 아직도 완성되지 않은 노래이며, 끝내 완성되지 않을 오늘의 노래인 것이다. 정선아라리는 강원도 지방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돼 있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 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명사십리는 아니라면서 해당화는 왜 피며/ 모춘 삼월이 아니라면은 두견새는 왜 우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1,000여수가 넘는 아라리의 노랫말 가운데 가장 오래 된 아라리다. 일곱 충신들은 거칠현동에서 산나물을 뜯어먹으며 생계를 이어왔다고 하여 뒷산을 '백이산(白夷山)'이라고 부른다. 정선군은 1985년 그들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남면 낙동리에 칠현비(七賢碑)를 세웠다.
    고려의 충신들이 개성을 떠나 정선 땅을 찾아온 길목은 어디인가? 개성에서 영서지방을 거쳐 성마령이나 마전치를 넘었을까? 아니면 오대천 물줄기를 타고 조양강변으로 흘러들어 왔을까? 동해를 끼고 강릉에서 임계를 거쳐 삽당령을 넘었을까? 정선서 만난 사람들은 필자의 물음에 고개를 좌우로 젓기만 할 뿐이다.

- 광업진흥(2002. 5·6월 합병호)

-----
이규섭
Florist Meister Schule 기획이사
시인 ·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http://columnist.org
[칼럼니스트]를 이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