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5월 16일 No. 448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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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9일 [그해오늘은] 군정법령 19와 88



오늘날 신문사를 차린다고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돈이다. '무슨 돈으로'나 '누가 대는 돈으로'가 1차 화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것은 신문사만이 아니라 모든 기업의 기본이다.

그러고 보면 15년 전까지 신문은 '기업'이 아닌 셈이다. 그래서 신문사를 차리는 데 가장 큰 요건이 돈이 아니라 '허가'였다. 신문사를 차릴 자격이 있는가 정부가 심사한 다음 내주는 허가.

그것은 얼핏 합리적이고 또 어렵지도 않은 행정절차 같다. 하지만 그 과정은 그리스의 신탁 같은 종교의식에 가까웠다. '허가한다'는 소리를 듣기가 신의 음성을 듣기보다 어려워서다.

경제가 크게 성장한 70년대에 신문들이 늘어나기는커녕 중앙의 종합일간지는 8개사에서 7개사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런 허가제를 도입한 것은 자유당이나 군사정권이 아니었다. 언론자유의 본산 같은 미국의 군정시대에 들어온 것이다. 1946년 오늘 미군정이 공포한 군정법령 88호 (신문및 기타 정기간행물 허가에 관한 건)가 그것이다.

미군정이 처음으로 허가제를 도입한 것은 아니다. 1907년에 제정된 광무신문지법이 그 효시다. 을사조약 직후 일제의 주도로 이루어진 이 법은 조선인의 신문창간을 '허가제'로 묶고 주한 일본인에게는 설립내용을 신고하면 그만인 '계출제'를 적용했다.

그런 악법을 광복 직후인 45년 10월 미군정이 군정법령 19호(신문 기타 출판물의 등기)를 통해 신고제와 같은 등기제로 고친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 그것이 1년도 못돼 다시 허가제로 바뀐 것은 아쉬운 일이나 미군정만 탓할 일은 아니다.

미군정 이후 40년간 군정령 88호는 물론 광무신문지법까지 끌어들여 언론자유를 억누른 것은 한국의 역대 정권이다.


- 세계일보 2002.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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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평 (梁平)

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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