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5월 24일 No. 446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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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심보다는 시민정신으로

     국제대회 개최를 앞두고 시민의 질서와 예절에 관한 글을 10년도 훨씬 넘은 지난날 쓴 적이 있는데 오늘 또 쓴다. 평소 불친절하고 속이고 불결하게 해 왔더라도 제발 손님이 있는 동안만은 잘해 보자고 써야 할 것이니, 그것의 되풀이가 즐겁지 않다. 손님 부를 때 집 안팎을 좀 쓸고 닦는 것쯤이야 주인의 도리라고 쳐도, 손님 계실 때만 평소의 못된 성질 죽이고 다소곳이 있다가 그 뒤에 또 평소 하던 짓으로 돌아가 버린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주장하고 싶은 것은 이제 정말 평소에 잘하자는 것이다. 또 우선 우리끼리 잘하자는 것이다. 손님에게 잘 보이려고 잘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내 이웃을 위해 잘해 보자는 것이다. 이것이 안되니까 때마다 '한시적으로라도 착해지자'는 소리를 하게 된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동안 서울 시내 소매치기사건 발생 건수가 줄었다. 그들도 날마다 신나게 펼쳐지는 잔치를 텔레비전을 통해 보느라고 바빠 '영업'을 소홀히 하게 됐으리라는 해석도 있지만, 그들의 애국심 쪽에 무게를 두고 싶다. 내외국인 모두 올림픽에 넋을 잃고 있을 때라 주머니를 털기는 이 때보다 더 좋은 때가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소매치기들도 한국민으로서 한국 선수단의 선전에 열광하고 환호했을 것이다. 그리고,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나쁜 인상을 받고 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국민들은 외국 손님들을 정성을 다해 친절히 맞았다. 어느 경우에는 친절과 환대가 너무 지나쳐 외국인이 어리둥절해 할 정도였다. 관전 태도도 질서있고 도량이 있는 것이어서 세계의 칭찬을 받았다. 올림픽에 앞서 1986년에 열린 아시아경기대회도 잘 치렀다. 걱정되었던 86, 88의 두 큰 행사를 정작 닥쳐서는 생각보다 잘 해냈다. 애국심의 발로였다. 그 애국심이 발휘된다면 올해의 월드컵 축구도 아시아경기대회도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한 때의 애국심이라 해도 애국심은 소중하다. 그러나, 그보다는 평소에 인간을 아끼는 마음,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조심성을 지니는 것이 더 값지다. 무심코 무리지어 길이나 문앞 가로막기, 사람이 많이 모인 장소에서 마음대로 떠들고 웃기, 위협적으로 버스나 트럭 몰기, 아무 데나 침뱉기나 담배 꽁초 버리기 따위는 아주 사소하지만, 남을 배려하지 않는 마음에서 나온다. 질서나 공중예절은 시민정신이 성숙돼 있으면 걱정될 것이 없다.
     이제 우리도 컸다. 올해 큰 국제행사는 애국심보다는 시민정신과 인간애로 치렀으면 한다. 애국심도 좋지만 애국심은 자칫 편협과 배타로 기울 위험이 있다. 우리와 맞싸우는 선수들이라도 뛰어난 재간을 보이면 서슴없이 박수를 보내자.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모임임을 생각하자. 우리는 나라가 작아도 마음은 큰 나라가 될 수 있다. 올해 겨울 올림픽에서 김동성이 당한, 분통한 일을 생각하자.
     이제는 우리도 남에게 일시적으로 보이려고 급하게 꾸미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 주자.
     올림픽 하면서 우리처럼 온나라가 법석이었던 나라가 드물다. 올림픽이라 해도 한 도시의 행사로서, 경기장이나 문화행사장을 벗어나면 올림픽이 열리는지 어떤지를 그 도시 사람들도 모를 만큼, 차분하게 치러지는 것이 보통이다. 여러 도시에서 열리는 월드컵 축구대회는 올림픽하고는 또 다른 성격을 지난 행사이기는 하지만, 지방정부가 분에 넘친 전시효과를 꾀하지 말았으면 한다.
     없던 것을 새로 차리기보다는 있는 것을 보여 주고 잘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외국인들은 의외로 호화롭게 꾸민 곳보다 한국인의 일상적인 삶의 현장을 보고 싶어하는 수가 많다. 교통편과 숙박시설, 안내하는 책자나 지도 같은 것에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다른 것은 몰라도 위생관념과 청결 문제는 우선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당장 우리에게도 눈쌀찌프려지는 곳들이 있다. 식탁 위나 주변에 화장실용 두루말이 화장지를 무신경하게 두고 있는 식당들이 있다. 여러 명이 함께 먹는 찌개를 내오면서 국자와 나눌 그릇을 주지 않는 것도 고쳐야 한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면 금방 달라질 수 있는 일이다.
     요즘 말많은 휴대전화 예절 문제도 시민들이 양식으로 선택할 일이다. 자신의 교양없음이 드러나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한국이 통신강국이라는 것을 전세계에 뽐내고 싶다면, 차 안에서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데서 아주 큰 소리로 전화하고 전화받을 일이다. 그러면 아마 외국인들이 돌아가서 "그 사람들 돈은 좀 있는 듯한데 상놈들 같아." 할 것이다. 이것도 외국인을 의식하기보다 먼저 내 이웃을 생각해서 내가 좀 참으면 될 일이다.


- 한국한센복지협회 '복지' 2002년 5.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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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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