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5월 20일 No. 444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 딴 글 보기 | 손님 칼럼 | 의견함 | 구독신청/해지 | columnist.org |
속도 그리고 메마름

     사람들이 하도 쫓기듯 살다 보니까, 이제는 느긋하게 살자거나 지난 시절이 좋았다고 쓴 책들이 잘 팔린다. 사실 그런 이야기는 어느 시대에나 나온다. 어느 시대에나 그 앞 시대들보다 바쁘게 사니까.
     지금도 생존하는 유명한 분이 젊은 시절에 쓴 글에서 총을 쓰는 전투의 메마름을 이야기했다. 옛날에 칼이나 창으로 싸울 때는 내가 죽이는 또는 나를 죽이려는 사람의 시선을 볼 수 있었으나, 이제는 총을 쏘는 자도 맞는 자도 서로 얼굴을 볼 수 없으니, 이 얼마나 멋없고 메마른 일이냐 하는 이야기다. 나는 그 양반이 아마 군대에 가지 않았거나 갔더라도 전투부대에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죽고 죽이는 싸움터는 어떻게 하더라도 처절할 수밖에 없다.
     나는 2년 반 동안 어느 매체에 글을 내내 쓰고 있지만, 담당자의 얼굴을 모른다. 이메일과 전화로만 접촉해 왔다. 피차 바빠서 만날 기회가 없었다. 며칠 전에는 웹사이트의 중고시장 코너를 통해 익산에 있는 청년한테서 컴퓨터 관련 기기를 샀다. 나는 은행 계좌로 돈을 보냈고 그는 택배회사를 시켜 물건을 보냈다. 거래를 짧은 시간 안에 간단히 끝냈다. 메마름을 이야기하자면 이런 일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고교나 대학의 합격자 발표장에 가 보는 사람도 이제는 거의 없고, 손으로 편지를 써서 봉투에 넣고 우표를 붙여 빨간 우체통에 넣는 즐거움도 이제는 거의 없고, 어머니가 예스런 글자체로 쓰신 편지를 객지에서 받아 보는 감명도 이제는 거의 없다. 옛날 기준으로 보면 멋없고 메마른 시대다.
     요즘 세상이 정말 옛날보다 재미없는 세상일까. 인터넷이 생활을 메마르게 하는 것일까. 바로바로 이메일로 소식을 전하고 더러는 화상전화로 통화한다. 온라인의 만남이 자주 오프라인 만남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것은 오히려 현대에 누릴 수 있는 즐거움 아닌가.
     어느 시대에나 인간은 즐거움을 만들어낸다. 다만, 지나간 시대의 일은 언제나 더 아름답게 여겨질 따름이다.


- 벼룩시장 '즐거운 인터넷 여행' 2002.05.20


-----
박강문
칼럼니스트

http://columnist.org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