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5월 18일 No. 443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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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성(代價性)

    각종 '게이트'가 '네 다리 빼라 내 다리 넣자' 식으로 꼬리를 물면서 약방의 감초가 된 말이 대가성(代價性)이다. "순수한 정치자금이다. 대가성은 전혀 없다"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다. 그래서 잠깐 빌려준 것이지 대가성이 있는 건 아니다" "수사당국은 대가성 여부를 입증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는 등 날이면 날마다 신문과 방송을 누비고 있다.
    대가의 사전적 의미는 노동이나 금전을 지불했을 때 돌아오는 물질적 정신적 보답이다. 직장인들이 받는 월급은 한 달간 제공한 노동의 대가이고, 일정액을 내고 구입한 물건이나 서비스는 지불한 돈의 대가다. 이러한 대가는 정당하고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근년에 들어 지체 높은 사람들 때문에 매스컴의 단골손님이 된 대가성이란 말을 이처럼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 그건 이미 사전적 뜻을 멀리 벗어난 뇌물(성), 즉 부당한 대가 겨냥임을 삼척동자도 다 안다. 검은 돈 수뢰혐의로 당국에 소환되는 일부 정치인이나 공직자, 기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대가성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국민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그건 뇌물이 아니다'를 달리 표현한 것임을 환히 알고 있다.
    뇌물(성)을 대가성으로 바꿔 말하는 방식을 이중화법(double speak)이라고 한다. 직접적인 용어가 미칠 충격이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서 완곡하게 둘러대거나 은유적인 표현을 하는 것으로 경기후퇴를 마이너스 성장, 가격인상을 가격현실화, 후진국을 개발도상국가, 불법정치자금을 통치자금 등으로 표현하는 것 등이 좋은 예이다. 외교용어나 특정집단의 은어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각종 게이트에 연루된 이들이 즐겨 쓰는 대가성이란 말도 그런 것이다. 이를 뇌물이라고 직접 표현했을 때 국민들이 받을 충격을 고려한 갸륵한 심사로 이해 못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들의 눈물겨운(?) 마음씀씀이에도 불구하고 사건이 터질 때마다 국민들이 받는 충격과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허우적거리며 고단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가냘픈 기대와 의욕이 무참히 짓밟히고 그로 인한 상처와 무력증이 치유 불가능 상태로 치닫기 때문이다. 해도 너무 한다.
    보통사람들이 입고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일 모두 참아가며 죽어라 모아도 한번 만져 보기 힘든 거액을 아무 대가 없이 거저 주고받았다면 믿을 사람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지나가는 강아지가 웃을 일이다. 눈 가리고 아웅도 분수가 있어야지. 세상에 비밀과 공짜는 절대 없는 법이다. 그리고 잘난 사람들한테는 어수룩하게 보일지 몰라도 국민은 그들의 생각처럼 그렇게 멍청한 핫바지가 아니다.


- 웹진 '인재제일' 5.6월호 (2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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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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