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5월 16일 No. 441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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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6일 [그해오늘은] 중국의 '검은 상처'



중국이 제국주의 세력들에게 입었던 상처는 얼추 나은 것 같다. 5년 전의 홍콩 반환으로 1840년의 아편전쟁이라는 가장 오래된 상처도 155년만에 아물었다.

대만 문제도 외세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크게 보아 중국의 살점이 밖으로 떨어져 나간 상처는 아니다. 시간이 가면 아물 것이다.그러나 중국의 모든 상처가 나을 수는 없다. 1858년 오늘 청과 러시아가 맺은 아이훈(愛琿)조약이 그렇다.청이 서구 열강의 침략에 정신없는 틈을 타 러시아가 연해주를 차지한 이 조약의 상처는 지도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러시아는 16세기부터 시베리아로 진출하려 했으나 청이 강력히 막아 사냥꾼과 모피장수들이나 드나들었다.1689년의 네르친스크 조약으로 연해주 진출은 사실상 봉쇄된 상태였다.

그러나 러시아가 제국주의에 눈뜨게 되면서 연해주는 미국과 영국을 견제하는 전략적 요충으로서 그 가치가 갈수록 커졌다.

아이훈조약으로 러시아와 청은 아무르강을 국경으로 하며 연해주를 공동관리하게 됐다. 그러나 불과 2년 뒤의 베이징조약으로 연해주는 러시아 영토가 된다.

당시 중국인들은 그런 조약들의 아픔을 제대로 느끼지도 못했다. 당시 헤이룽장(黑龍江)이나 '하라무렌강'(검은 강)으로도 불리던 아무르강 일대는 인적도 드문 외지였다.그래서 연해주를 점령한 러시아는 군량미를 위해 한국인 이민들을 받아들였으니 바로 그 조약으로 카레이스키(고려인)의 역사가 시작된 셈이다.그 카레이스키들이 신산한 이민생활을 하는 동안 중국의 역사도 혼수상태를 겪는다.거기서 깨어나 보니 인구는 크게 늘어나 있고 '검은강' 일대는 자원이 풍부한 금싸라기 땅이 돼 있었다.그러나 아이훈조약은 되돌리기 어려운 검은 상처로 남아 있다.


- 세계일보 2002.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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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평 (梁平)

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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